<분수대>위장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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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반 시간후 내가 또다시 저 영원히 미움받을 인간으로 변해버리면 나는 의자에 앉은채 몸을 옥죄는 무서움에 질려 떨면서 눈물을 흘리겠지.그리고는 이 세상에서 내 마지막 안식처였던 이방을 오락가락 하며 나를 위협하는 온갖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겠지.과연 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것인가.아니면 마지막 순간 제 몸을 구제할 용기를 발휘할 것인가.」 19세기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에서 지킬박사가 독백하는 마지막 장면이다.약품의 힘을 빌려 인간의 이중인격을 분리,착한 인간성의 주인공이었던 지킬박사가 차츰 악한 인간성의 하이드 쪽으로 비중이 기 울어져 결국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줄거리다.이 작품은 특히 인간의 정신내면에서 벌어지는선악의 투쟁을 리얼하고 오묘하게 묘파해 「이중인격자」인 사람을지칭할 때 흔히 인용되기도 한다.
성격은 양면성이나 이중성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 외면마저 그때그때 변화시키지는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픽션이기는 하지만 『지킬박사와 하이드씨』는 선악에 따른 인간의 모습을 일치시켰다는데묘미가 있다.실제로는 위선(僞善)이나 위악(僞惡 )이 말이나 행동은 가장할 수 있어도 그 외양마저 바꾸지는 못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팝송 『탈을 쓴 악마(Devil in Disguise)』도 「천사인 체」하는 악마의 모습을 읊는다.탈을썼어도 본성을 감추지는 못한다는 내용이다.하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본성이야 어떻든 전혀 딴 사람으로 탈바꿈 하는 사람들도많다.정형술(整形術)이 크게 발전한 탓이다.주로 더 아름다워지려는 여성들이 이용하지만 실제의 모습을 감춰야 하는 첩보전에서도 많이 이용된다.
위장간첩이니,아니니 아직도 설이 분분한 이수근(李穗根)의 변장방식은 아주 서툴렀다.67년 3월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그는2년도 채 못돼 겨우 가발에 콧수염만 붙이고 탈출하려다 체포된것이다. 그에 비하면 아랍계 필리핀인으로 위장해 교수로 활약하다가 검거된 한 간첩혐의자의 경우는 추리.첩보소설만큼이나 흥미롭다.『깐수교수와 간첩 정수일』이란 소설에서 「간첩 정수일」로본색이 드러난 그가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주인공이라 면 최후의 독백은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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