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강1만리>49.제2부 강소.절강성-소주 연극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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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예향(藝鄕) 소주(蘇州).「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
항주(杭州)가 있다」는 옛말이 전하는 도시.감히 하늘의 천당에비할만큼 물산이 풍부하고 풍광이 수려해 예인들의 발길이 끊이지않았고,때문에 강남문화의 요람이 된 곳이다.세계 에서 가장 다리가 많아 「동양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소주는 예술과 물의 도시이기도 하다.
탐사팀이 찾은 소주연극박물관은 천년 고도 소주시내 한쪽판에 자리잡고 있었다.웅장한 옛 무대가 어우러진 멋스런 고건축물에 자리잡은 이 박물관은 전시와 공연을 통해 중국 문화를 알리는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소주연극박물관은 청나라때 산서(山西)상인들이 회합장으로 사용하던 전진회관(全晋會館)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비석이나 문루(門樓)가 예사 건축이 아님을 보여준다.
문짝에는 위지공(慰遲恭)과 진숙보(秦叔寶) 두 문지기신(門神)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역사속에선 사라졌지만 아직도 전통연극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들이다.처마 아래에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내용을 담은 조각 18폭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지붕 위에도 유비가 사천으로 가기전 유장이 유비에게 관인을 넘겨주는 장면을 조각해 세워놓았다.
관우의 고향인 산서인들에게 『삼국지연의』이야기는 곧 고향의 얘기다. 문을 들어서면 바로 양쪽에 취고루(吹鼓樓)가 있다.손님맞이 음악을 연주하는 누각이다.
다시 쪽문을 넘어 들어가면 날아갈듯한 처마선에 덩그렇게 올라앉은 옛 무대가 나온다.
높이 2의 무대 양쪽 위층에는 발코니형 관람석이,아래쪽으로는악대가 자리하는 복도형 박스가 있다.무대는 한면이 6씩이고 조각된 난간으로 3면이 둘러쳐져 있다.
지붕꼭대기에는 두마리의 봉황이,처마아래는 두마리의 용이 날고있고 금사자가 기둥을 받치고 있다.무대중앙 천장에는 조정(藻井)이라는 돔모양의 공명시설이 만들어져 있다.배우의 목소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과학적 장치다.
뒷면으로는 무대 5배 넓이의 뒷무대가 있다.의상과 각종 소도구 저장실이자 배우들의 분장실이며 대기실이다.
무대와 마주보는 자리에 지금은 전시관으로 바뀐 관제묘(관우 사당)가 자리한다.관제묘등 신을 모신 사당앞에 무대를 지어 신에게 바치는 연극을 자주 공연했던 옛 전통을 따른 것이다.
이 전시실에는 각종 전통극의 역사.작품.명인들이 자세히 소개돼 있고 1백여년전 명배우들이 직접 손으로 쓴 대본등 진귀한 자료도 함께 전시중이었다.
소주연극박물관은 지난 83년 설립됐다.정식개관은 86년.박물관의 전신 전진회관은 그 자체가 중국현대사의 산증인이다.
본래 상인들이 지은 숙소였으나 전쟁중 크게 훼손됐고 58년부터 80년까지는 안경공장으로 사용됐었다.
그후 20가구가 사는 인민 거주지가 되기도 했다.생활을 꾸려가기 급급했던 시절의 흔적이 건물 곳곳에 상처처럼 새겨져 있다. 82년 성(省)정부가 인민폐 80만元(약 8천만원)이란 거금을 들여 수리하고 86년 공연.전시장을 갖춰 정식 개관했다.
***박 물관 운영은 소주시 문화국 관할이다.지난해 예산은 인민폐 28만元(약 2천8백만원).희곡연구소.곤극연구소.평탄연구소등 3개 연구소와 자료실.연출실.행정실.공연장이 갖춰져 있다. 현재 직원은 18명.대개 극단 등에 종사하던 이들로 구성돼 있다.행정보다 예술적 배려를 우선했다는게 박물관 부관장 설년춘(薛年椿)의 말이다.
박물관내 공연장에는 매일 공연이 열린다.공연내용은 주로 이 지방의 전통극과 옛 노래.전시.공연을 통해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존.발전시키는 셈이다.입장료는 대개 인민폐 5元(약 5백원).
문학과 예술의 남방문화도시 소주는 특히 노랫가락이 아름답기로이름나 빼어난 음악과 연극이 발전했다.
소주 가락의 백미(白眉)는 한국의 판소리처럼 혼자 또는 둘이부르는 평탄(評彈).소주평탄은 중국 1천여 설창예술중 백미로 꼽힌다. 삼현(三弦)을 타며 혼자 창(唱)과 아니리로 엮어가기도 하고,때로는 비파가 곁들여져 두사람이 화창(和唱)하기도 한다.창.대사뿐 아니라 인물의 표정과 동작까지 곁들여 익살스럽게얘기를 풀어가는 장면은 영락없는 우리의 소리꾼 모습 바 로 그것이었다.
***소 주말의 독특한 콧소리 여운이 감미로움을 더해주는 소주평탄은 매일 저녁 주민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모으는 촉매제였다.
이날 공연은 두사람의 평탄연주자가 절정 부분만을 추려 연주하는형식으로 진행됐다.
소주 전통극인 소극(蘇劇)에는 내화장 수상 배우 왕방(王芳)이 특별출연했다.다음날 남경(南京)에서 열리는 수상식 참석 때문에 시간을 낼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왕방은 탐사팀을 위해 특별출연을 허락해주었다.
기름과자를 파는 가난한 총각과 기생의 얘기를 그린 『점화괴(占花魁)』중 「술취해 돌아가다(醉歸)」대목.
왕방의 수준급 연기와 섬세한 묘사가 세련미를 특징으로 하는 소극의 참맛을 더해준 공연이었다.왕방은 탐사팀을 위해 박물관내옛무대에 올라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다.
96년은 박물관 개관 10주년.전국의 곤극 매화장 수상자를 전부 초청해 기념공연을 할 예정이다.
규모나 시설은 그리 화려하지 않지만 이런 박물관이 중국에는 제법 많다.중국에 비해 경제선진국을 자처하는 우리에겐 왜 변변한 전문 박물관 하나 없는가를 되씹게 된다.우리 문화가 보존할가치가 없는 것이 이유가 아니라면 유난히 중국만 이 자기문화에별스런 애착을 가진 나라여서 일까.
▧다음회는 「모순의 문학무대 상해」편입니다.
오수경 교수 한양대 중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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