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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EU - 팽창하는 유럽] 4. 통합 첫 시험대 유럽헌법안 처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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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유럽연합(EU)의 앞날을 좌우할 첫번째 관문은 유럽헌법안 통과다. 헌법안은 마스트리히트.니스.암스테르담 조약 등 각종 협약 등을 체계적으로 재정리하면서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킨 EU의 기본 틀이다.

초안은 지난해 6월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이 의장으로 있는 '유럽 미래에 관한 회의'가 제시했다. 가장 큰 특징은 EU 집행부를 연방정부처럼 강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신설된 게 EU 상임의장과 외무장관이다. 지금까지의 순번제 임시 의장과 달리 새 의장은 회원국 다수결로 선출돼 2년6개월의 임기를 보장받는다.

외무장관은 회원국 전체의 외교.국방.안전 관련 정책을 담당한다. 상임의장과 외무장관을 뒷받침하는 핵심 조항은 'EU법이 각 회원국의 법보다 우선한다'는 조항이다.

예정대로라면 헌법안은 지난해 말 EU 정상회담에서 통과돼야 했다. 그러나 투표권의 분배문제로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EU 인구의 60%, 또는 회원국의 과반수 찬성으로 이뤄지는 이중다수결제 도입에 스페인과 폴란드 등 중소국가들이 반발했다. 자국의 표결권이 줄어든다는 이유에서다.

엉뚱하게도 이 걸림돌은 알카에다가 해결해줬다. 지난 3월 11일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테러 사건의 영향으로 총선에서 야당이 집권하면서 적극적인 EU 참여를 위해 태도를 바꿨고 폴란드도 뒤따랐다. 따라서 6월 말 EU정상회담에서 새 헌법안이 확정될 게 확실시된다.

더 큰 문제는 각국별 비준 절차다. 25개국 가운데 영국을 포함해 최소한 8개국에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나머지 국가에서도 의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 동유럽의 경우 EU 가입에 따른 과실을 기대해 적극적이다. 그러나 서유럽 국가들은 그렇지 않다. EU헌법안이 자국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반론에다 서유럽 국가들의 외국인 혐오증도 만만찮다.

당초 의회 비준으로 처리하려던 영국이 최근 국민투표안으로 선회한 것도 이 같은 여론의 압력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도 국민투표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부결될 가능성이 크다. 25개국 가운데 어느 한 곳이라도 비준하지 않을 경우 헌법안은 발효되지 못한다. 지루한 재협상이 계속될 전망이다. 끝내 엇나가는 나라는 EU에서 퇴출당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런던=오병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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