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중 꺼낸 카드가 스타 디자이너 로빈슨이다. 대중 패션에서도 스타 디자이너의 명확한 정체성을 발견하고 싶은 소비자의 욕망을 반영한 조치였다. ‘2009 봄·여름 뉴욕 패션 위크’ 셋째 날인 7일 오후 패션쇼장에서 로빈슨을 만났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패션 디자이너 톰 포드와 자신이 비교된다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구찌는 포드가 너무 유명해지자 해고했다) 그가 선수를 쳤다. 그는 “갭과 같은 대중적인, 그래서 전 세계 어디서나 누구든 입을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스타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사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는 분명하지만 브랜드보다 자신이 부각되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1990년대 초반까지 어려움을 겪던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구찌는 94년 포드를 영입한 뒤 부활했다. 포드의 절제되고 세련된 디자인이 구찌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만들면서 브랜드도 이전의 명성을 되찾게 된 것이다.
로빈슨이 포드에 비견되는 이유는 비슷한 전적이 있어서다. 그는 2003년 캐주얼 브랜드 페리 엘리스의 여성용 저가 스포츠웨어를 맡아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디자인으로 변신시켰다. 그가 디자인한 페리 엘리스 의류는 기존의 대중적인 판매망이 아니라 ‘바니스 뉴욕’ 같은 고급 백화점에 입성했다.
로빈슨은 “갭에 낙관주의를 디자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에선지 이날 발표한 내년 봄·여름용 의상은 밝고 화사한 파스텔톤이 주를 이뤘다. “피부에 닿았을 때 아름다워 보이는, 재미난 색”이라는 그의 해설은 옷으로 구체화됐다. 여성용 재킷에는 자연스러운 주름을 살리고, 블라우스나 티셔츠에는 줄무늬로 재미를 표현해 냈다. 그는 “파스텔톤의 디자인을 사람들이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쳤다.
뉴욕=강승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