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올림픽이 낳은 체육공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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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988년 9월 17일, 서울 올림픽 개막식에서 성화가 타오르고 있다. 정부는 서울 올림픽 잉여금 3500여억원으로 이듬해 체육진흥공단을 설립했다. [중앙포토]

20년 전 오늘(1988년 9월 17일), 서울 잠실벌에서는 제24회 서울 올림픽이 막을 올렸다. 서울 올림픽의 기억은 잊혀져 가고 있지만 올림픽 잉여금(3520억원)으로 이듬해 4월 설립한 국민체육진흥공단은 연매출 3조8000억원(2007년 기준)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경륜, 경정, 스포츠 복표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간 공단은 현재 한국 체육의 자금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관료화·비대화를 혁파해 새로운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편집자

국민체육진흥공단이 개혁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7월 부임한 김주훈 이사장이 “공단의 사행성 사업 비중을 줄이고 조직을 슬림화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서울올림픽 개최 20주년을 맞아 16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변화의 목소리가 큰 만큼 필요한 부분은 바꿔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체육진흥공단은 88년 서울올림픽을 모태로 출범했다. 공단의 정식 명칭조차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이다. 흑자를 낸 서울올림픽 잉여금 3520억원을 종자돈으로 89년 4월 닻을 올렸다. 이후 공단은 경륜·경정·호텔운영(올림픽파크텔)·스포츠복표 등으로 사업 분야를 넓혀왔다. 공단이 조성한 체육진흥기금은 그간 사용한 1조9950억원을 제외하고도 1조3515억원이나 적립됐다. 지난 1년간 기금운영과 각종 사업으로 번 돈만 4196억원이나 된다. 이 돈으로 체육 관련 단체나 시설 운영비를 지원하고, 엘리트 선수들에 대한 연금 지급, 생활체육 지원업무 등을 한다. 이처럼 한국체육과 뗄 수 없는 조직이지만 수년 전부터 비대화·관료화됐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국 스포츠 발전의 밑거름=공단이 조성한 체육진흥기금은 한국 스포츠 발전의 ‘밑천’이었다. 일각에서는 “공단이 없었어도 정부에서 당연히 예산을 지원했을 것”이라고 폄훼하지만 체계적인 기금 조성과 관리를 통해 국내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것만은 틀림없다. 공단 설립 이후 스포츠 관련 투자는 과감해졌다. ‘맨땅’에서 뛰던 전국 초·중·고교생이 비록 일부지만 인조 잔디와 우레탄트랙에서 달릴 수 있게 됐다. 2000년 이후 올해까지 모두 688개 운동장이 잔디구장으로 바뀌었거나 바뀔 예정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공단의 지원을 등에 업고 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 개최에 뛰어들고 있다. 올해만도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2013년 광주 여름 유니버시아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최에 100억원 가까운 기금이 지원된다.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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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부터 전국 곳곳에 세우기 시작한 국민체육센터도 이미 96곳에 들어섰다. 올림픽 등 국제대회 메달리스트 연금 지급과 체육과학연구원 운영도 공단이 맡고 있다.

◆IOC 규정 어긋난 태생적 한계=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하는데도 공단에 대한 여론은 곱지 않다. 가장 큰 지적을 받는 부분이 조직의 비대화와 이에 따른 비효율이다. 현재 공단 정직원은 791명(정원 850명)이다. 하지만 경륜·경정 등의 발매소 비정규직을 합치면 3000명에 육박한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조직이 필요 이상으로 크고, 특히 중상위 직급은 적정 인원보다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김주훈 공단 이사장조차 취임 직후 “경정-경륜본부 통합을 통해 조직 슬림화를 추진하겠다”고 얘기할 정도다.

경정·경륜·스포츠복표 등 공단 수익 사업 대부분이 사행산업이라는 점도 공단의 아킬레스건이다. 국민이 공단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현 정부 들어 경정·경륜 사업의 민영화 문제가 제기된 것도 “국가기관이 사행산업을 하면서 어떻게 스스로 관리·감독을 하겠느냐”는 부정적 여론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업을 민간에 맡긴 뒤 국가가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한체육회와의 통합 문제도 체육계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은 5월 취임 때부터 “체육회와 공단 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체육회와 통합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공단의 태생적 한계 때문이다. 바로 공단 설립의 근거인 국민체육진흥법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규정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홍성표 대전대 석좌교수는 “IOC 규약에 따르면 올림픽 기념 사업은 IOC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맡는 게 원칙”이라며 “공단 설립 당시 이런 IOC 규약을 참고하지 않았는데 서울올림픽 20주년이 된 지금은 이런 문제를 정리할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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