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전 킬러 박주영 ‘더 이상 용두사미는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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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프랑스 프로축구리그 데뷔전이었던 FC 로리앙과의 경기에서 전반 26분 선제 결승골을 터뜨린 박주영이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골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모나코 AFP=연합뉴스]


박주영(23·AS 모나코)은 ‘데뷔전의 사나이’다.

박주영이 14일(한국시간) 모나코 루이 2세 경기장에서 열린 프랑스 1부리그 FC 로리앙과의 홈경기에서 1골·1도움을 기록했다. 2-0 승리의 주역이었다. 전반 26분에는 오른발 슛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후반 26분에는 쐐기골을 어시스트했다.

경기를 중계한 카날 플뤼는 “박주영은 AS 모나코가 받은 큰 선물”이라고 흥분했다. 프랑스의 축구 사이트 ‘맥시풋’은 그를 주간 최우수 선수 및 베스트11로 뽑았다. 스포츠 전문지 레키프는 박주영에게 양팀을 모두 합쳐 최고 평점인 7점을 줬다. 무엇보다 반가운 건 “기술적으로 남달랐다”라는 AS 모나코의 사령탑 히카르도 고메스의 극찬이다.

박주영이 데뷔전에서 훨훨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5년 6월 우즈베키스탄과의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은 그의 A매치 데뷔전이었다. 당시 대표팀 감독은 1년 전만 해도 “후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박주영을 폄하했던 본프레레였다. 그러나 박주영은 0-1로 뒤지던 후반 종료 직전 천금 같은 동점골로 본프레레와 한국을 구했다. 박주영은 닷새 후 열린 쿠웨이트와의 예선 5차전에서도 선제골을 작렬하며 4-0 승리를 이끌었다.

K-리그 데뷔도 화려했다.

고려대 1학년을 마치고 프로행을 선언한 2005년 초 대다수의 축구 전문가는 “아마추어와 K-리그는 다르다”며 혹독한 적응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자 전문가들은 할 말을 잃었다. 프로 데뷔 두 번째 경기인 성남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돼 첫 골을 쏘았다. 그해 박주영은 두 차례나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모두 18골을 쏟아냈다. 당연히 신인왕은 그의 차지였다.

프랑스 진출을 앞두고도 우려가 컸다. K-리그에서 4월 이후 골을 넣지 못했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 카메룬전에서는 행운 섞인 골을 하나 넣었지만 쓰디쓴 8강 실패를 맛봤다. 그러나 박주영은 이번에도 보란 듯이 부활했다.

K-리그, 대표팀, 프랑스 1부리그 등 새로운 무대에 뛰어들 때마다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반전의 드라마를 쓴 셈이다. 목표를 향한 놀라운 집중력, 긴장된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배포와 뚝심, 그리고 행운이 그의 곁에 함께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언론과 팬들의 지나친 관심을 몹시 힘들어했던 박주영은 모나코에서 마치 고교 시절처럼 축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평소 양식을 즐겨 먹어 음식 문제도 걱정이 없다. 청구고 1학년 때 1년간 브라질 축구학교에 유학하며 외국 생활의 외로움을 극복한 경험도 있다. 유학 시절 익힌 포르투갈어로 브라질 출신 감독과 간단한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게다가 데뷔전에서 골까지 터졌다.

하지만 데뷔전 활약이 성공의 지렛대는 될 수 있지만 보증 수표는 아니다. 박주영의 K-리그 기록은 2006년 8골→2007년 5골→2008년 2골로 계속 하향 곡선을 그렸다. 자신의 특성을 수비수에게 간파당한 후에도 똑같은 기량을 유지해야 꿈에 그리는 빅리그로 도약할 수 있다. 박주영이 “데뷔골이 기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미소를 감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해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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