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사흘만에 뒤집힌 졸속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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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신도시등 전국의 30㎞ 이내 인접지역 전화요금 인상등을내용으로 하는 전화요금 조정안이 정보통신부의 발표 사흘만인 11일 사실상 백지화로 결론났다.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의 반발은 일사불란하게 포위망을 좁혀 마침내 이 안을 벼랑 으로 밀어붙였다.지난 10일 긴급 당정(黨政)협의에서 이미 그 가닥이 잡혔다는 것을 기자가 감잡을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이 화끈 달아오른분위기 때문이었다.
정통부 공무원들은 『원점에서 재검토』라는 당정협의 결과가 나온 11일 일손을 놓고 허탈해했다.정책이 「불발」에 그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발표에서 「사망선고」까지 사흘만에 도달한 사례는 드문 일이다.이번 해프닝은 대(對)국민 서비스정책을밀실에서 처리하는 정부당국의 안일한 태도가 빚은 결과라고 많은사람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공청회등 국민들의 목소리를 수렴하는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절차가 없었다는 얘기다.
정통부는 이번 요금조정안이 중.장거리 시외전화와 국제전화의 요금인하로 전체적으로는 전화요금 인하효과가 더 크기 때문에 반대할 일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그러나 이 정책이 국제전화나 장거리전화보다는 시내 및 인접구간 통화가 대부분인 수도권 신도시를 비롯해 특정지역 주민들의 가계에 주름살을 지우는 것임을 정통부도 부인하지 못한다.
이번 파문은 정부가 정책을 당당하게 추진하지 않아 오히려 손해 본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정통부는 당초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사업에 따른 재원마련과 시내전화 품질향상을 명분으로 「시내요금 인상,시외요금 인하」라는 정책을 제시했었다.이 에 대해 재정경제원은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요금의 인상은 안된다고 맞섰다.결국 한국통신의 실정을 감안해 인접지역 시외전화요금 인상이라는 타협안으로 조정됐었다.
전문가들은 국민이 반발할 수 있는 정책이라도 명분과 근거가 있었다면 부처간 의견조정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대국민 설득작업에 공을 들여야 했다고 지적한다.
이번 해프닝은 또 대선.총선등에 앞서 봇물같이 터지는 정부측의 선심공약에 일침을 놓는 계기가 됐다.92년 현 여당은 대선을 앞두고 「전국단일통화권」이라는 공약을 내걸었다.당시 정부.
여당 관계자들은 신도시지역의 시내전화통화권 진입을 약속했다.이듬해인 93년 정부는 신도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30㎞ 이내 인접통화구간에 대한 시내요금 적용을 발표했다.당시 전문가들은 30㎞라는 기준에 의문을 표시하며 「신도시특혜」라고 비판했었다.정통부의 이번 요금조정안은 바로 그 조치를 원점으로 돌려 놓는 것으로 파문을 자초한 셈이 됐다.
이원호 정보통신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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