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힘으로 가는 기차'오래된 기술'에 담긴 미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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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20면

CAT는 생태 친화적인 대안기술을 개발해 공동체에실제로 적용하고 있다 ①태양광 발전으로 작동하는 태양광 공중전화

지난 5월 영국 런던의 유스턴 역에서 4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내린 곳, 맥힌레스 역. 그곳에서 5㎞ 떨어진 곳에 대안기술공동체(CAT:Center for Alternative Technology)가 자리하고 있었다. CAT에 도착하니 기차와 같은 지속 가능한 교통 수단을 이용한 손님이라며 입장료(성인 8.4파운드)의 반만 받는다.입구에는 위아래의 두 탱크 안에 들어있는 물의 균형을 이용해 움직인다는 수력기차가 방문객을 옮기느라 시원한 물소리를 연방 내고 있었다.

대안기술공동체 영국 맥힌레스

가파른 경사(35도)를 오르는 수력기차를 타고 공동체 안으로 들어서자 작은 호수가 눈에 들어온다. 나에게 공동체를 안내해 줄 교육부서 직원이 “멀리 오느라 수고하셨어요”라며 반갑게 맞는다. 그는 자신을 “조(Jo)”로 부르라고 했다. “서울에서도 멀지만 영국 도시로부터도 멀리 숨어 있다”는 내 농담에 웃으며 조가 말을 잇는다.“웨일스는 많은 사람이 휴가 오는 곳입니다. 쉬러 왔다가 우리 센터를 방문해 삶의 중요한 문제를 편하게 접근하고 이해하는 기회를 갖지요.”
이것을 나비 효과라 하나. CAT는 어느 웨일스 관광 안내 책자에도 빠져 있지 않을 만큼 유명한 곳이 되었고 연간 6만5000명의 방문객이 다녀간다고 한다.

②무공해 퇴비만을 쓰는 생태정원③100% 수력으로 움직이는 수력기차. 이 기차는 물탱크에 물을 채워 중력으로 움직인다(아래 그림).

1973년 제라드 모건그렌빌이라는 사업가가 이곳 부지를 사들이기 전까지는 버려진 슬레이트 채석장이었다.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 창립 멤버가 꾸려졌고, 자원봉사자와 모금을 통해 공동체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채석장을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거나 고립된 삶을 즐기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자연과 더불어 오래 사는 방법, 곧 자연을 알고 그것과 대화하는 방법을 다 함께 모여 실천하는 장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곧 공동체의 방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1970년대는 에너지 위기가 부각되고 핵전쟁의 위험이 우려되던 시기여서 CAT에 많은 자원봉사자와 기술자가 모여 들었어요. 그 덕에 다양한 기술과 경험을 서로 공유할 수 있었죠. 우리들만의 공동체는 접어두고 곧 다른 모습의 CAT를 만들기로 했어요.” 조의 설명이다.

CAT 구성원들은 지속 가능한 삶과 대안기술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고, 그것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한 일종의 실험교육공동체로 거듭났다. 지금은 공동체 안에 8가구가 상주하며 CAT 직원 90명 대부분은 공동체 주변에서 생활한다.

“지금까지는 20억 명의 인구가 근대적인 기술문명의 도시 생활을 살았지만, 21세기엔 그 수가 100억 명이 되리라 추정돼요. 생태적인 삶과 재생에너지 발굴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지요.”

조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CAT는 재생에너지와 대안기술에 관한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컨설턴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서 얻는 수입이 주요 운영 재원이다.
“우리 터에서 가꾼 채소며 과일들로 준비된 점심식사를 같이하고, 공동체 운영이 상당히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일반적인 작업장과는 아무래도 다르지요.”

CAT를 돌며 이것저것 보고 만지고 체험하면서 점점 그곳의 매력에 빠져들자, 어떻게 해야 CAT 구성원이 될 수 있는지 자연스레 묻게 됐다.
“자원봉사자는 누구든 될 수 있어요. 그러나 전문적인 인력이 필요할 땐 외부에서 공모해 충원합니다.”
이 공동체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삶이란 외진 곳에서 기술을 부정하는 고립된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술이 우리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도구의 하나라고 이해하고 기술을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찾는 것은 ‘생태적으로’ 건강한 기술, 똑똑한 기술이다. CAT는 환경오염의 주범인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든다.

웨일스는 런던에 비해 강수량이 세 배가 많아 물이 풍부하다. CAT도 돌무더기 언덕 꼭대기에 만든 저수지 물을 이용해 전력을 얻고 유기적 농업과 조경을 한다. 고립된 지역에선 전력기관의 전기를 공급받는 것보다 풍력 발전기나 태양전지판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 CAT 안에는 바람과 태양으로부터 얻은 전력으로 작동되는 공중전화 부스, 오두막집에 전기를 제공하는 풍력 발전기, 자연 흙이 아닌 슬레이트 조각에서 채소와 꽃을 얻는 기술 등 재미있고 신기한 것들이 영국 여름의 긴 하루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동화 ‘돼지 삼형제’에서 늑대의 심술을 견딘 가장 견고한 집은 지푸라기와 나무가 아닌 벽돌로 지은 집이었다. 하지만 CAT는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품어내는 시멘트 벽돌 대신 웨일스 지역에서 키운 낙엽송 목재로 골격을 세우고 벽은 볏짚으로 채우고 황토를 바른 생태친화적인 집을 짓는다. 그렇게 지은 집에서 톱밥을 태우는 난로로 온기를 만들고 운반 거리가 짧은 그 지역의 산물로 식사를 준비한다. 적은 물을 사용하는 수세식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재래식 용변 방식으로 퇴비 확보에 도움을 주는 등 별다른 지식과 큰 노력 없이도 친환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불편하냐고요? 이렇게 살다 보니까, 오히려 바깥 세상의 생활방식에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수력기차를 다시 타고 내려오며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도는 구절이 있었다.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 기술을 부정한다면, CAT 입구에서 방문객을 언덕 위로 나르는 수력기차 대신 흙 계단을 만들어 올라가면 그만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력기차를 타고 가는 편안함과 재미를 막지 않는다. 이제 나에게 수력기차는 시곗바늘을 돌려놓은 고물 차가 아니라 후손들과 자연을 오래 공유하기 위한 대안기술의 상징적 도구로 자리 잡는다.

진정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우리 사고의 전환이며, 이를 위한 생활방식의 변화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 변화와 교육의 대중성을 위해 CAT가 움직인다. CAT가 관광객이 많은 웨일스 지역에 있는 것도, 공동체에 들어서자마자 오리와 노는 아이가 많은 것도 단순히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 이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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