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에 9억 있어야 … 연금 펀드로 ‘거북이 마라톤’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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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28면

그믐달 신세
‘월급 364만원-지출 310만원=저축 여력 54만원’. 대한민국 40대 가장의 주머니 명세서다. 통계청 가계수지로 본 평균적 자화상이 그렇다. 저축액은 6700만원에 빚은 5200만원, 아파트 값은 2억1000만원. 적자 인생은 면했지만 맘 놓을 처지도 못 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모(40) 차장은 “두 아이 학원비며 주택 대출금, 기본 의식주에 매달리다 보면 변변한 노후 종자돈 마련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그의 노후 준비는 매달 20만원씩 붓는 적립식 펀드가 전부다.

노후 준비 빵점 40세 김 차장, 어떻게 하나

그러나 25년 뒤인 65세에 은퇴한다고 가정할 때 박 차장의 노후는 만만치 않다. 궁색하지 않게 사는데 월 227만원이 필요하다(기본형 노후). 역시 통계청의 40대 가계수지로 뽑아낸 숫자다. 하나은행 김창수 재테크 팀장은 “물가가 해마다 3%씩 오른다면 65세 때의 미래가치로는 월 475만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만약 그가 85세까지 살면 20년치 생활비를 마련해 놓아야 하고, 목돈으로 8억8000만원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픽 참조> 해외여행도 한번씩 가고, 아내와 골프도 가끔 치고, 뮤지컬 감상도 하는 느긋한 노후를 위해선 월 831만원이 필요하다(품위형 노후). 이를 위해 65세 때 쥐고 있어야 할 목돈은 15억4000만원이다. 이 같은 금액은 지난해 여름 중앙SUNDAY가 노후연금 특집기사(7월 15일자)에서 제시한 돈과는 조금 차이 나는데 대상을 40대로 좁히고, 소득·지출액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요즘 금융사의 재무전문가를 찾아가 노후 청사진을 그려 달라고 해도 ‘월 200만·300만·500만원’식으로 밑그림을 그린다.

아무튼 박 차장에게 쥐어진 실탄은 월 54만원이다. 이걸로 과연 노후를 준비할 수 있을까. 물론 월급은 매년 오른다. 그러나 최근 5년간 노동부 통계를 보면 연 6% 수준이고, 아이들이 클수록 지출도 늘어난다. 김창수 팀장은 “박 차장이 기본형 노후로 만족한다고 해도 90만원을 더 저축해야 간신히 필요자금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피델리티자산운용과 서울대 은퇴설계지원센터가 최근 조사했더니 한국인들은 노후에 월 21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준비된 돈은 월 138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늘그막에 쪼들리며 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사실 재무설계사들을 만나면 제일 먼저 강조하는 게 자녀 사교육비 문제다. 교육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노후를 저당 잡혀선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펀드 하나 들었다고 ‘노후준비 OK’를 외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일단 김 팀장이 제시한 투자 보따리는 목표수익률을 연평균 10%로 잡았다. 턱없는 과욕 대신 ‘금리+α’ 정도로 눈높이를 낮췄다. 은행권의 특성상 안정성을 중시해 적금·장기주택마련저축의 비중을 46%로 잡았다. 그는 “지난해 갑자기 솟구친 주가 때문에 적금을 우습게 보기도 하지만 요즘 시장을 봐라. 적금이 항상 나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장마저축은 펀드로도 가입할 수 있고, 연 300만원 한도로 불입액의 40%를 소득공제받을 수 있다. 단 무주택자거나 3억원 아래(기준시가)의 집을 가져야 한다. 또 가입 5년 안에 해지하면 절세(節稅) 혜택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 김 팀장은 “박 차장이 지출을 줄이지 않고 54만원 수준으로 목표를 이루려면 국내외 주식형 펀드에 60% 이상을 넣어야 하고 수익률도 15%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재테크 고수들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거북이 연금작전
그렇다고 낙심할 일은 아니다. 연금도 있기 때문이다. 고갈 위기감이 크다고 하지만 박 차장 세대에서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한생명의 신호영 경인 FA(Financial Advisor·재무전문가) 센터장은 “기본 생활비를 감안하면 가급적 연금 위주로 노후 준비를 하는 게 좋다”고 권했다.

사례의 박 차장이 30년간 국민연금을 부으면 월 70만원을 받을 수 있다(45등급). 이 돈을 감안하면 품위형 노후자금은 월 327만원, 기본형은 157만원으로 줄어든다. 65세에 만들어야 할 목돈도 각각 12억원과 6억원으로 작아졌다. 하지만 신 센터장은 “10% 수익률을 잡아도 12억원을 만들려면 월 107만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기본형에 초점을 맞추라는 소리다. 신 센터장이 계산하니 해마다 10%씩 복리로 저축액을 불리면 월 52만원으로도 25년 뒤 6억원을 만질 수 있다. 기본 노후는 해결된다. 그러나 역시 “10%는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신 센터장은 일단 개인연금 펀드를 추천했다. 매달 25만원씩 넣으면 65세에 2억2000만원(연 8% 수익)이 생긴다. 부족한 3억9000만원은 어떻게 메울까. 매년 월급이 늘어나는 만큼(6%) 야금야금 변액 유니버설 상품에 넣는다. 노후 준비 첫해엔 연 300만원, 다음해엔 318만원, 3년차엔 337만원이다. 이렇게 거북이처럼 25년을 굴리면(수익률 연 8%) 부족분을 채운다. 신 센터장은 “변액 유니버설 상품을 선택하면 추가 납부를 활용해 증액이 가능하다”며 “65세까지 목돈을 마련한 뒤 연금으로 전환해 종신까지 수령하면 된다”고 말했다. 10년 이상을 유지하면 차익은 모두 비과세된다. 신 센터장도 “저축 여력이 모자란다면 철저한 ‘소비통제’로 종자돈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생 리스크를 축복으로
‘10% 수익쯤은 자신 있다’는 투자자도 있다. 좀 더 공격적인 은퇴설계를 위해 삼성증권 PB연구소에 포트폴리오를 의뢰했다. 연구소 김상문 연구위원은 “복리의 마술을 기대하고 은행 예·적금에 넣어도 물가를 감안하면 기본 노후자금 만들기가 쉽지 않다”며 “투자 종자돈을 크게 늘릴 수 없다면 투자형 상품을 적극 써먹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기본 원칙을 깔고 두 가지 팁을 얹으면 해답이 보인다는 것이다. 먼저 그는 “길게 투자할수록 혜택이 많은 상품, 중간에 환매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상품을 고르라”고 조언했다.

김 위원은 “연금 펀드와 장기주택마련 펀드가 이런 조건을 고루 충족한다”고 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월 60만원을 투자하되 ‘연금 펀드(25만원) : 장마펀드 혹은 라이프사이클 펀드(25만원) : 해외 신흥국 펀드(10만원)’에 분산하는 해법을 내놓았다. “장마 펀드의 가입 대상이 안 되면 라이프사이클 펀드도 대안”이라고 했다. 달마다 일정액을 불입하는데 만기가 가까울수록 주식 비중을 줄여 위험을 낮춘다. 투자자 스스로 비중을 바꿀 수 있어 공격적인 성향에 제격이다.

그가 풀어놓은 투자 보따리는 보험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코뿔소처럼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대신 적절한 수익률로 착실하게 펼치는 마라톤 레이스가 노후 준비의 왕도라는 얘기다. 특히 김 위원은 “소득공제 혜택으로 환급받는 돈을 25년간 재투자하면 적지 않은 돈이 보태진다”고 했다. 그는 “연금 펀드는 주식형·채권형·혼합형이 있다. 연 1~2회 정도 종류를 바꿀 수 있으니, 시황에 따라 유연하게 갈아타면 된다. 연령에 맞게 주식 편입 비율을 조절하는 펀드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은 “10년 넘는 장기로 봤을 때 성장 가능성이 큰 신흥국 증시에 발을 담그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다. 25년을 준비하면 자금의 절반 정도는 공격적인 상품에 넣어도 좋겠다”고 했다. 사실 자녀 학자금이며 결혼자금, 예기치 못한 지출까지 생각하면 위의 사례처럼 원활하게 노후 준비가 안 될 수도 있다. 김 위원은 은퇴설계를 ‘장(長)’자로 요약했다. “하루라도 일찍, 길게 준비해야 부담이 줄고 장생의 리스크를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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