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심의부터개혁하자>4.'억지'가 통하는 예결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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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11월 국회 예결위 정책질의 시간.안우만(安又萬)법무장관을 상대로 한 장기욱(張基旭.민주.15대낙선)의원의 호통이회의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법원앞에 호화백화점(삼풍)이 있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입니다.바로 문앞에 백화점이 있으니까 모레면 우리 아들 생일,열흘후면 결혼기념일등을 떠올리는 거예요.공적 업무의 신성.청렴함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張의원이 돌연 다음해 예산과 아무 상관도없는 법원청사 입지(立地)를 문제삼자 安장관은 황당한 표정.그래도 예결위원의 질의니 새겨듣는 모습을 보였다.
예결위 정책질의는 예산심의를 위한 마당이지만 의원들의 질의중30~40%는 예산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정치성 화제들이다.
의원 개개인의 자질도 문제다.조순(趙淳)부총리 시절인 89년예결위에서의 해프닝.
오후 늦게까지 예결위 회의를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2시간동안 정회가 선포됐다.대기실에 머무르던 趙부총리에게 한 야당의원이 전화를 걸었다.『근처 M호텔에서 몇몇 의원이 모여 고스톱을치고 있는데 부총리도 같이 치면 어떻겠느냐』는 내용이었다.
趙부총리는 합류를 거절했다.이어 속개된 회의에서 의원들은 趙부총리를 「국회를 경시하는 인물」이라고 몰아붙이며 자정까지 호되게 비판했다.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에서의 예산안 통과를 담보로 내세워 정부측의 추가 양보를 받아내려 한다.이 과정에서 엉뚱하게곤욕을 치르는게 재정경제원 예산 관계자들이다.
94년 예결위.박희부(朴熙富)의원이 복도에서 이영탁(李永鐸)예산실장의 넥타이를 거머쥐었다.『당신 이럴거야』하는 고성이 울려퍼졌다.같은 당 중진인 C의원의 지역구 사업을 청부받아 추진하다가 재경원에서 수용하지 않자 폭발한 것이다.
질의를 빙자해 「협박성 청탁」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95년 11월22일 예결위 회의장.자민련 김범명(金範明.충남논산)의원의 정책질의가 시작됐다.김철용(金徹容)해운항만청장에게 고향을 묻더니 본격 질의에 나섰다.
『나는 충남 논산사람입니다.청장은 경북출신이라 그런지 서해안개발의 중요성을 잊어버리신 것같은데….대천 해운항만청 건설사업이 내년 예산에 아무 것도 안들어갔어요.청장은 책임질 용의가 없습니까.』 국회의원에게 예결위원이 되는 것은 대단한 특권이다.전체 2백99명 의원중 한해 50명이 예결위원으로 선정된다.
단골 의원도 많다.신한국당의 서상목(徐相穆.서울강남갑).야당의유인학(柳寅鶴.15대 불출마)의원 같은 경제통들이 대표적이 다. 상대당과의 기세싸움에서 선봉에 설 악역(惡役)담당도 필수적이며 정치적 배려로 뽑히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전체 의원중 절반정도는 예결위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4년 임기를 마친다.
『당이 의원들에게 일종의 「선물」을 준다는 생각으로 뽑아요.
지역구 출신의원을 우선 배려하고 상임위별로 골고루 배정하죠.현실적으로 전문성만 따져 배정할 수가 없어요.무소속에서 입당한 의원은 최우선 배려대상이죠.』(신한국당 李康斗 제2정 책조정위원장) 의원들이 모두 자질이 없는 것은 아니다.공인회계사같은 전문가를 따로 고용해 전체 예산을 스크린하는 의원,몇몇 관심있는 아이템을 집중공략해 파고드는 홈런형 의원등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의원들이 있다.14대 국회에서는 이철(李哲). 박석무(朴錫武).유인태(柳寅泰).신계륜(申溪輪)의원등이 유급 전문가를 두고 예산심의에 임한 대표적 의원들로 꼽힌다(이상 15대 모두 낙선).
유인학 전의원의 증언.『공인회계사를 두명 정도 초빙해 보좌진과 함께 여관방을 하나 빌려 20일쯤 정밀 분석을 합니다.그런데 돈이 많이 들어요.공인회계사 1명에 1백50만원,보좌진 밥값등 1천만원은 그냥 깨지죠.그래도 큰 것 하나 건지면 보람이있는데….』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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