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 많은 미국비자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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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외교관들 가운데 주한(駐韓)미대사관 영사과 직원처럼 심신이 고달픈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지난 한햇동안 주한 미대사관에 접수된 「비(非)이민비자」(NIV) 신청건수는 모두 40만9천건.전세계 미 재외공관 가운데최고기록이다.두번째로 비자업무 부담이 많은 주(駐)멕시코대사관에 비해서도 10만건이 많았다.
미 정부에서 파견된 정규 영사는 고작 13명.이들이 1인당 하루평균 3백~4백건의 비자심사를 처리하고 있다.미 이민법 214조B항은 「미국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은 일단 불법체류 의사를 갖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입국자가 정해진 체류기간내 귀국할 것임을 스스로 입증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영사는 서류 또는 구두로 제시된 비자 신청자의 귀국의사 입증이 만족스러운지만 판단하면 된다.시간이 없는 주한 미대사관 영사들은 대충 서류만 훑어본뒤 몇마디 질문을 던지고는 바로 비자를 줄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아예 인터뷰를 생략하는 경우도 많다.요즘엔 전체 신청건수의 60% 정도를 서류만으로 심사한다.실수가 없을 수 없다.
내용과 관계없이 서류가 정해진 요건에 안맞는다는 형식상 이유로 비자발급이 거부되거나 전혀 불법체류할 의사가 없는데도 「불법체류 예비자」로 찍혀 발급이 거부되는 사례가 많은 것이다.
***까다로운 서류요건 이는 단지 신청자 본인의 억울한 일로끝나지 않는다.평균적인 비자발급거부율을 계속 높게 함으로써 비자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인 비자면제대상국(VWPP)지정을 그만큼늦추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80년대말까지만 해도 20%를 웃돌았던 거부율은 그동안꾸준히 떨어져 지난해 7%선까지 내려갔다.이에대해 캐서린 디 로빈슨 주한 미총영사는 『전체 신청비자의 80%를 차지하는 단기상용(B1)과 관광(B2)비자의 평균발급거부율 이 연속 2년간 3.5%대로 떨어져야 비자면제대상으로 고려할 수 있지만 한국은 아직 6%선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한국이 비자면제대상국이 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그러나 국내 여행업계의 주장은 다르다.불법체류 가능성 위주의심사관행과 사소한 절차상의 문제로 거부되는 사례만 개선된다면 당장이라도 사증면제기준에 근접할 수 있다는게 여행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엄밀한 의미의 거부율은 미 대사관측 주장만큼 높지 않다는 것이다.특히 단기관광이나 상용방문의 경우 당장이라도 무비자가 가능하다고 여행업자들은 입을 모은다.이미 여행사를 통한 대리신청(TARP)의 경우 거부율이 2%선까지 내려가 있다.
미 정부는 불법체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 불법체류자가 생각처럼 많지 않다는 것은 미 정부통계로도 뒷받침되고 있다.92년10월 미 이민국(INS)발표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후 불법체류 검거자수에서 단연 멕시코(1백 30만명)와엘살바도르(33만명)등 중남미가 수위를 차지했다.한국인은 불과9백25명으로 미국의 비자면제대상국인 이탈리아(6만7천명).프랑스(1만5천명).영국(8천명)에도 훨씬 못미치는 미미한 숫자였다.오히려 최근들어 미국교포의 역 (逆)이민이 느는 추세에 있다.80년의 경우 8백명이었던 역이민이 90년대들어 매년 5천~6천명으로 크게 늘었다.한국인에게 미국의 매력이 그만큼 줄어든 것이다.불법체류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든 건 당연하다.
일부에선 지난해 큰 파문을 일으켰던 비자부정발급 사건 이후 미대사관측이 고의로 비자거부율을 높이고 있다는 견해마저 제시하고 있다.또 비자발급을 둘러싼 부정행위가 아직도 근절되지 않았다는게 여행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불법체류 가능성을 위주로 심사하는 비자발급관행을 개선하는 것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는게 많은 사람들의 견해다.이미 한국은 미국이 「불법체류자 양산국」으로 주목할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미국여행업계의 유 력한 고객이라는 올바른 상황인식을 미정부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전세계 22개국에 대해 비자면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아시아에서는 브루나이와 일본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유럽국이다.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 1만4천6백달러였던 86년 면제대상에 합류했다.이제 우리도 그 대열에 낄 때가 된 것이다.
신청건수 세계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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