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STX조선, 세계적 크루즈 업체 아커야즈 경영권 인수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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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조선업계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불리던 아커야즈가 문패를 ‘STX 유럽’으로 바꿔 달았다. 세계 최대의 크루즈를 만드는 조선소 인수를 마무리짓고 9일 귀국하는 강덕수(58) STX 회장을 인천공항에서 만났다. 그는 1일 출국해 노르웨이 아커야즈 본사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에 참석해 회사명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또 노르웨이·핀란드·프랑스 등 아커야즈의 유럽 내 주요 조선소를 둘러봤다. 일주일 넘는 강행군이었지만 피곤한 기색 속에 환한 표정이 번졌다.


그는 “유럽을 한나절이면 간다고 생각했는데 열 달이나 걸렸다”며 말문을 열었다. 아커야즈의 인수전에 뛰어들어 경영권까지 잡는 데 꼬박 10개월이 걸렸다는 말이었다. 그는 “이번에 유럽을 방문하니 STX에 시큰둥했던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계열 조선소를 돌며 경영진과 노조를 만나 세계 최고 조선소로 키우자는 결의를 다졌다”고 말했다.

STX는 지난해 10월 아커야즈의 지분 39.2%를 8억 달러에 인수했다. 강 회장은 “한 외국계 투자은행의 주식 인수 제안을 받았다. 다른 국내 업체도 받았지만 거부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몇등인가를 따지기보다 광활한 해외 시장을 잡아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유럽 현지의 반응은 차가웠다. 아커야즈는 1738년 설립된 유서 깊은 조선소다. 유럽 각국의 아커야즈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이사회와 노조는 아시아의 이름 모를 업체에 회사가 인수되는 데 대해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했다. 유럽연합(EU)도 ‘크루즈선 건조 기술이 한꺼번에 한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며 반독점 조사에 착수했다. STX는 지분을 40% 가까이 가진 최대주주가 됐지만 9명의 이사회에 단 한 명의 이사도 파견할 수 없었다. 희한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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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회장은 “처음엔 현지의 부정적 시각이 너무 커 적잖이 놀랐지만 정공법으로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그는 “주주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STX는 단순히 인수합병(M&A) 차익만 보고 치고 빠지는 재무적 투자자가 아니라 조선업에 목을 맬 인더스트리 투자자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올 초부터 8월까지 유럽을 다섯 차례 찾았다. 그때마다 10여 일씩 묵으며 주주와 노조를 붙잡고 설득했다. 그는 “강성부터 온건 성향의 아커야즈 4개 노조도 모두 만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쉽사리 개선되지 않았다. 현지 언론은 ‘이름도 없는 한국의 조그만 업체가 슬금슬금 기어들어와(creeping) 유럽의 자존심을 삼키려 한다’고 썼다. 강 회장은 “이번 인수과정에서 최대 위기는 3월 하브야드의 역M&A 시도였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2위 조선업체인 하브야드가 2~3월에 주주를 규합해 아커야즈의 지분을 10.2%까지 늘린 뒤 STX의 경영권 장악을 막기 위한 임시주총을 요구한 것이다.

강 회장은 국내에서 대동조선(2001년)·산단에너지(2002년)·범양상선(2004년) 등을 잇따라 인수해 ‘M&A의 귀재’로 불려왔다. 하지만 그런 그도 “그 순간만은 표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STX는 아커야즈를 세계적인 조선소로 발전시킬 주역이 하브야드인지 STX인지 판단해 달라고 주총에서 호소했다. 결국 STX는 주주 과반수(57.8%)의 선택을 받았다.

강 회장은 “당시 주주총회에서 약속한 주주 권익 보호를 위해 하브야드 등이 매집한 지분을 공개 매수했다”고 말했다. STX는 이를 통해 아커야즈의 지분 40.4%를 6억 달러에 추가 인수했다. STX가 지난해 10월 아커야즈 인수 당시 주당 가격이 97노르웨이크로네(NOK)였지만 공개매수 때는 주당 63NOK에 인수한 것이다. 여기엔 운도 따랐다. 공개매수 시점에 발표된 아커야즈의 2분기 실적이 예상외로 부진했다. 때마침 터져 나온 러시아의 그루지야 공격 등으로 노르웨이 증시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인 것이다.

강 회장은 “5일엔 프랑스의 생나자르 조선소를 찾은 사르코지 대통령을 만나 크루즈 선상에서 ‘한나절이면 오는 유럽을 오는 데 열 달이 걸렸다’고 농을 건넸다”고 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에 대해 “한국이 유럽의 모든 조선소를 가져갔는데 그만하면 짧은 것 아니냐. 한국과 프랑스의 조선산업 협력이 필요하다”고 응수했다고 그는 전했다. 강 회장은 “M&A는 시너지가 있을 때 과감히 베팅하는 것이다. 이번 M&A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로 나갈 무대를 만들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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