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 떡고물’ 노려 정보 도둑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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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칼텍스 고객정보 유출 사건의 피의자들이 “정보 유출을 사회 문제화해 피해자들의 대규모 소송을 유발시킬 계획이었다”고 9일 경찰이 밝혔다. 사건을 수임할 법무법인에 고객 DB를 넘겨 거액을 챙기겠다는 의도였다. 최근 급증하는 정보 유출 관련 대규모 소송을 역이용하려던 범행이다.

◆‘소송 유발’로 한탕 꿈꿔=피의자들은 경찰에서 “올 초 발생한 옥션 해킹 사건과 이후 이어진 대규모 소송을 보고 이 같은 계획을 세웠다”고 진술했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이병귀 수사실장은 “피의자들은 개인정보를 유출시켜 사회 문제화한 다음 고객 정보를 특정 법무법인에 전달해 GS칼텍스를 상대로 소송을 맡도록 할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피의자들은 서초동의 법무법인 직원과 접촉했다. 8월 중순 피의자 김모(24·구속)씨는 부친의 소송 문제로 만난 법무법인 사무장 K씨(33)를 찾아가 ‘샘플 CD’를 보여줬다. GS칼텍스 고객 8명의 개인정보가 담긴 CD였다.

김씨는 ‘술집에서 주웠다’며 소송 가능성 등을 물었다고 한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K씨에게서 ‘집단소송으로 가면 몇 억원을 벌 수 있다’고 들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날 경찰에 출석한 K씨는 “김씨가 집단소송에 대해 물어와 상담만 했다. 정보 유출을 지시하거나 개인 정보를 받은 것은 아니다”고 부인했다.


◆“기업 경각심 높여” vs “부작용 우려”=2005년 이후 대규모 정보 유출 사건 뒤엔 으레 피해자들의 소송이 이어졌다. 2005년 엔씨소프트가 온라인게임 ‘리니지2’의 서버 업데이트 중 50만 명의 정보가 노출돼 회원 50여 명이 소송을 냈다. 올 2월 중국발 해킹으로 1000만 명의 정보가 유출된 옥션은 현재 13만 명이 원고로 나섰다. 1119만 명의 정보가 유출돼 사상 최대로 꼽히는 GS칼텍스 역시 소송이 이어질 전망이다. 네이버 등 포털엔 원고인단을 모으는 카페가 30개 이상 활동 중이다. 카페당 수천 명, 최대 2만 명이 가입했다.

현재 5000여 명을 모집한 백승우 변호사는 청구액을 1인당 100만원으로 잡았다. “직원의 고의로 인한 정보 유출인 만큼 LG전자 입사지원서 노출 사건(70만원)보다 높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참가자는 법원 인지대와 수임료로 1인당 1만원을 낸다. 승소하면 변호사는 승소 금액의 20%를 받는다.

법조계에선 ‘GS칼텍스의 소송 규모가 1조원을 넘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정보 유출과 관련한 소송이 불황 중인 법조타운의 새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등에선 관련 소송에 “기업의 경각심을 일깨운다”며 반기는 입장이다. 경찰대 최정호(사이버범죄) 교수는 “EU 의회는 이미 1995년 ‘개인정보 보호지침’을 제정하는 등 기업·관리자의 책임을 명문화했다”며 “회원 가입 등에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요구하는 한국 관행에 비춰 기업의 관리 책임 역시 무거워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 기업들은 ‘회사 책임만 강조한다’며 볼멘 목소리다. 특히 외부 해킹에 의해 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한 곳은 “피해자인 기업의 책임을 지나치게 부각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인터넷업체 관계자는 “GS칼텍스 사건처럼 아예 소송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심리가 퍼지는 것 아닌지 두렵다 ”고 우려했다.

천인성·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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