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인터뷰>영화"코르셋" 뚱보役 女주인공 이혜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날씬한 여자가 아름답다? 수많은 여성을 옥죄는 체형에 대한 강박관념에 당당히 도전장을 던진 여배우가 있다.최근 개봉된 영화『코르셋』(감독 정병각)에서 뚱뚱한 속옷 디자이너 공선주역을맡아 무려 18㎏의 살을 찌웠다가 촬영을 끝내고 거의 제 체중을 되찾은 새내기 배우 이혜은(李惠恩.23)양이 그 주인공.바람불면 날아갈 듯 가녀린 여배우의 이미지 대신 동글동글하고 씩씩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난 그를 생활부 홍은희(洪垠姬)부장이 만났다.
▶1973년 인천 출생 부평 서초등학교-북인천여중-구정중-무학여고 ▶96년 영화『코르셋』주연으로 데뷔 ▶현재 중앙대 연극영화과 4년 재학중 -최근에 살 빠지는 약을 먹다가 환각이 일어나 어린 아들을 살해한 30대주부가 생겨날 정도로 여성들의 「살빼기 전쟁」은 처절하지요.한창 자라는 유치원 꼬마들도 「다이어트해야 해요」하고 말하는가 하면 여중생들 가운데서는 교사 몰래 도시락밥을 버리기도 한다니까요.그런 면에서 뭇여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지금 몇 킬로세요? 『52㎏입니다.촬영 당시는 최고 68㎏까지 됐었죠.원래 49㎏을 유지했기 때문에 목표는 4㎏쯤 더 빼는 거지만 지금 정도도 괜찮으니까 무리는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살빼려고 고민하는 여성들에겐 거의 「환상적인」 얘기군요.『코르셋』에는 어떻게 출연하게 됐습니까? 『기획사에서 각 대학 연극영화과로 보낸 공문을 보고 이런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걸 알았어요.제 전공인데다가 8월 졸업을 앞두고 있어 장래 뭘 할까 궁리하던 참이었죠.꼭 주인공을 해보겠다는 야심(?)보다 줄거리가 마음에 들어 기획사를 찾아갔어요.거기서 주인공 이미지가 저와 꼭 맞는다면서 살만 좀 찌우면 좋을텐데 하는 말을 듣고 오디션 때까지두달 동안 7㎏을 찌웠습니다.그리고 영화 촬영시작할 때까지 넉달동안 11㎏을 더 늘렸죠.』 -전에도 그렇게 살이 쪄본 적이있습니까.
『원래 살이 잘 빠지고 잘 쪄요.고3때 상당히 살이 쪘다가 대학와서 다 빠졌거든요.대학에서 아일랜드 작가 존 싱거 작품인「바다로 가는 기사들」을 연극공연했을 때 나이든 할머니 역할을맡고 6㎏ 찌웠던 적도 있고,황순원씨의 작품인 「소나기」를 각색한 연극공연때도 두달동안 8㎏이나 몸을 불리기도 했습니다.』-마치 몸이 고무풍선 같군요(웃음).치열한 프로정신으로 배역에맞춰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급격한 체중 조절로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되는군요.
『그래서 몸무게를 늘릴 때도 위가 늘어나지 않도록 조금씩 자주 꾸준히 먹었어요.하던 운동은 다 그만두고요.영화 끝내고 살빼기 시작하면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특별한 병은 없고 쉬엄쉬엄땀이 좀 흐를 만큼씩 조깅과 헬스를 하라는 처방 을 받았습니다.』 -사면이 거울로 된 방에서 주인공 공선주가 벗은 몸을 스스로 돌아보는 장면은 쇼킹하던데요.커다란 가슴이 정면으로 나오는데 솔직히 섬뜩했어요.
『저도 놀랐어요(웃음).살찌우면서 매일 거울보는 게 아니니까그 정도인 줄은 전혀 몰랐거든요.』 -데뷔작으로 이런 역 선택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전 목표가 확실하다면 남의 눈에 상관없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성격이에요.거울의 방 장면도 처음부터 시나리오에 있었습니다.그 장면 찍을 땐 이왕 하는 거 보는 사람들이 쑥스럽지 않도록,영화 흐름 깨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잘 하자고 마음먹었지요.
그 부분만큼은 원하는 대로 된 것같아 만족해요.』 -극장에 가보니 생각처럼 살찐 여성관객들은 별로 없습디다.영화가 전하고자하는 주제는 「육체로부터 자유로워지자」였던 것같은데 보고나니 그보다 「뚱보는 정말 서럽구나」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던데요.
『그런 얘기 여성들한테 많이 들었어요.감독님은 현실을 보여주는 것,현실의 느낌을 전달하는데 우선 노력하신 것같아요.영화 찍으면서 처음 시나리오와는 느낌이 많이 달라졌습니다.맨처음에는페미니즘적인 주제였는데 주제 폭이 더 넓어졌어요 .이런저런 약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 얘기,그 중에서 뚱뚱한 여자 얘기를 담아보자,이런 거죠.중요한 건 선주(주인공)가 어떻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느냐예요.』 -그럼 시나리오 보고 기대했던 것과 다 만든 영화가 많이 달랐겠네요.
『랏류(가편집 필름)돌릴 때 이 영화가 내 생각과 다르게 만들어지는구나 하고 속상했는데 편집 끝내고 봤을 땐 내가 원하던거랑 다르지만 더 나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그전 시나리오였다면 남자들이나 뚱뚱하지 않은 사람들은 재미 없었을 지도 몰라요.』 -신인 여배우가 주연해서 흥행이 제법 되는 영화로는정선경씨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이후 2년만에 처음이라고들 하던데. 『아,그런가요(웃음).사회적인 분위기와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고,살 찌운 얘기 때문에도 많이들 보러오시고….흥행 잘되는 것도 좋지만 연기에 대해 제대로 평을 못듣는 게 섭섭해요.
악평이든 뭐든 듣고 싶은데 살찌운 얘기만 궁금해들 하지 요.』***다이어트,꾸준한 노력 중요 -부모님은 영화보셨습니까.뭐라시던가요.
『사실 무학여고때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연기에 빠져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영화과를 갔거든요.시사회에 오신 두 분이 잘했다곤 하셨는데 어머니는 좀 다른 느낌이셨던 것같아요.전 영화보면서 제가 아니라 저의 제일 친한 친구 「선주 」가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는데,어머니는 딸로 보이셨나봐요.촬영때는 잘 모르시다 화면속에서 뚱뚱해진 딸을 보고 무척 속상해 하셨어요.요즘은 제 살이 좀 빠져 즐거워하세요.』 -살찌우는 것과 살빼는것,어떤 쪽이 더 어렵습니까.
『찌운 살을 촬영기간 내내 유지하는 게 제일 어려웠지요.노상먹을 걸 가방에 넣고 다녔죠.제작진은 먹고 싶은 거 없는지 매일 묻고 제가 사달라는 것은 다 사다줬어요.힘든 건…지난 일은금방 잊으니까 지금이 더 힘든 것같네요.3,4 ㎏쯤 빠지곤 한동안 전혀 안빠지는 식으로 고비가 있는데 이걸 견뎌내기가 무척힘들어요.이번에 한가지 방법을 터득했는데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그것이 비록 고칼로리의 생크림 케이크라도-바로 그때 조금만 먹고 위안을 삼는 거예요.다이 어트하는데 제일 중요한 건 어떤 한가지 방법을 정하면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과 자기 최면을 거는 거라고 생각해요.저 맛있는 걸 못먹는구나 속상해 하지말고 맛이 별로 없어 보이는데 하는 거죠.』 -요즘은 어떤운동,어떤 식사를 하고 있습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집에서 가까운 고수부지에 나가 한 바퀴 뛰는 걸로 30분쯤 운동을 해요.저녁에는 일과 다 마치고 헬스 클럽에 가서 천천히,땀흘릴만큼 1시간이나 1시간반쯤 운동을 하죠.아침은 우유와 과일 먹고 점심은 먹고 싶 은 것 제대로 먹고 저녁은 샐러드 정도만 먹어요.대신 물은 하루에 1.5ℓ 충분히 마시고요.물 때문에 살찐다는 건 낭설이에요.피부 탄력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하거든요.또 단백질과 비타민이 부족하면결정적으로 몸이 망가진대요.전 단백질 은 우유.치즈.쇠고기 먹는 걸로 보충하고 종합비타민 영양제를 먹어요.』 -다이어트 관련 회사들에서 광고모델 제의가 몰려왔다지요.모두 거절했다면서요. 『열 군데도 넘는 것같아요.「날씬한 몸매가 전부가 아니다」는 취지가 마음에 들어 영화를 찍어놓고는 「살빼서 아름다워집시다」하고 광고찍는 거 우선 제 자신이 용납할 수 없어요.일반관객 중엔 제가 영화 끝내고 원래대로 살 뺀 것에도 배신감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어요.컴퓨터 통신에 들어가보면 영화에선 자기 생긴대로 살자고 그래놓고 왜 살을 빼느냐고 비아냥거리는 글까지도 올라옵니다.』 -영화에서 입었던 옷은 이제 못입겠네요.
『영화에서 입었던 정장이 마담 사이즈인 77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제가 입었던 코르셋이랑 속옷들은 다 외제였는데 영화끝내고모두 경매했어요.국내 브랜드에선 패션 속옷들은 85,90,95세가지 치수만 나온다는 것을 영화찍으면서 알게 됐어요.뚱뚱한 사람은 멋낼 권리도 없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아름다운 몸매」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전 마른 것보다 볼륨있고 탄탄한 체격을 좋아해요.원래 어떻게 보면 좀 통통해 보이는 편인데다 수영도 좋아하고 연극하면서스트레칭.재즈 댄스를 꾸준히 했거든요.제 키가 1백62㎝인데 50㎏은 넘기지 않으려고 하는 정도였지요.저는 제 몸이 좋은데주위에서 배우하려면 그걸로 되겠니,더 말라야 한다,그러는 거예요.배우들 다 말랐는데 왜 저까지 말라야 하는지 모르겠어요.우리 사회가 좀더 사람들의 개별성과 개성을 포용해주는 분위기가 됐으면 해요.미(美)란 관점에서도 요.김혜수씨도 인기가 많잖아요.여자들이 살빼려고 노력하는 게 남자들이 정해놓은 미의 기준에 맞추려는 건 데 그 기준에 참 불만이 많아요.』 ***능력관계없이 외모로 평가 -영화중에 남학생들이 날씬하고 예쁜 여자가 공부 잘하면 「퀸카」라고 하고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가 공부잘하면 「독한년」이라고 한다는 대사가 나오던데 몇달 동안이긴 했지만 뚱보들의 비애를 실감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를 접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능력과 관계없이 외모만으로 여성을 폄하하는 시선이 생각보다 훨씬 심하구나 하고 느꼈어요.속옷 디자이너나 다른 직장인들을 많이 만나면서 직장 다니는 여성은 너무 예뻐도,너무 못생겨도 참 힘들겠구나 생각했어요.』 -연기공부를 위해 뚱뚱한사람들도 많이 만나봤습니까.
『예.그런데 뚱뚱한 사람도 얼굴을 보면 두 가지가 있는 것같아요.뚱뚱한 것에 콤플렉스 갖고 곤두선 사람,남들이 쳐다보면 내가 뚱뚱해서 그러는구나 스트레스 받으면서 자기를 가둬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양희경선생님 같은 사람들도 있 어요.남들 먼저 챙겨줄줄 아는 푸근한 사람들이요.결국 본인의 생각이 외모도 결정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40대 이후의 얼굴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단 말이 있나 봅니다.앞으로는 어떤 역을 하고 싶습니까.
『역할보다 작품 위주로 연기하고 싶어요.어떤 배우들에겐 고정된 이미지가 있지만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제 색깔은 천천히 찾고 싶어요.지금 몇 편 제안이 들어와 있긴 한데 마땅하지 않네요.가을쯤에나 새 영화 시작할 것같습니다.』 [정리=이후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