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소 파문 불법의 현장 서울 마장동도축장 잠입 취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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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12일 오전8시20분쯤 시민들의 식탁에 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등 온갖 육류를 공급하는 서울성동구마장동 도축장 남쪽 출입구.취재진은 부근 건물 5층 옥상에 천막을 쳐 몸을 숨긴 채 도축장으로 들어가는 트럭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 췄다.경기도번호판을 단 1트럭이 골목길을 쏜살같이 달려 도축장안으로 거침없이 들어갔다.다른 트럭과는 달리 화물칸 아랫부분을 판자로 빙둘러 막아 쉽게 안을 들여다 볼수 없게 만든게 눈에 띄었다.
위에서 내려다 본 트럭 화물칸에는 축 늘어진 젖소가 실려있었다.둥그런 눈은 뒤집혀 있었고 젖부위와 배는 부풀대로 부풀어 풍선을 연상케했다.숨쉬는 흔적은 물론 외상.핏자국도 전혀 찾을수가 없어 죽은 소임을 한눈에 알수 있었다.
「축산물 위생처리법」상 원칙적으로 살아있는 소만 도축해야한다.다만 소가 죽기전 수의사가 진단해 인체에 무해하다고 판단,진단서를 첨부한 경우에는 죽은 소도 도축할 수 있다.이 경우도 목의 동맥을 끊는 절박(切迫)도살을 통해 피를 완 전히 뺀뒤 유통시켜야 하는데 이날 들어온 젖소의 목에는 아무 흔적이 없었다. 트럭에서 운전사가 내리자마자 7~8명이 떼를 지어 나타나판자 사이로 힐끗 소를 쳐다본뒤 운전사에게 접근했다(이들은 죽은 소만 취급하는 상인들이라 해서「까마귀」로 통한다.뒤에 알고보니 트럭 운전사도 브로커였다).
『얼마요.』까마귀들은 몇번이고 고개를 흔드는 운전사와 흥정하더니 결국 손에 수표와 만원권이 섞인 한뭉치를 쥐어주었다.죽은소 거래가 끝난 것이다.
검사원인 흰 가운 차림의 수의사가 건물안에서 나와 까마귀들과몇마디 얘기를 나눈뒤 화물칸을 힐끗 보고는 사무실안으로 다시 들어갔다.검사라기보다는 단 몇초의 「구경」이었고 순간 트럭에 실려있던 소가 도르래에 매달려 도축장 안으로 끌 려들어갔다.
이날 하룻동안 이 남쪽 통로를 거쳐간 40여마리중 죽거나 겉보기에 병든게 확실한 소는 모두 11마리.취재진이 도축장 앞에서 살펴본 11일부터 20일 사이 병들거나 죽은 소가 반입되지않은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무슨 병인지,무엇때문에 죽었는지도 모른채 이 소들은 그날로,아니면 다음날까지 경락대에 올려져 산 소에 섞여 팔려나간다.겉모양 만으로는 어느 것이 병든 소의 고기인지 구별이 안돼 정육업자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통되는 것이다.병원균이 득실대는 소와산 소의 고기가 뒤섞여 매일 시민의 식탁에 오르는 셈이다.취재진이 「정육점 주인」이라며 접근하자 병들어 갈비뼈가 흉측하게 드러난 소를 산 까마귀 한명은 『병에 걸렸지만 건강한 소의 고기 속에 섞어 납품하기 때문에 알아 볼수 없다』고 태연하게 말하기도 했다.
18일 오후.취재진은 병든 소의 유통 경로를 구체적으로 밝혀내기 위해 트럭운전사이자 브로커인 朴모(37)씨를 뒤따라가 봤다.죽은 소를 싣고와 반입시키고 돌아가던 그를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인 망우동 고개에서 붙잡고 물어봤다.
그는 죽은 소를 목장에서 30만원에 산뒤 아는 수의사에게 부탁해 병명이 허위로 기재된 진단서를 장당 3만원씩 주고 구한다고 했다.이 진단서에 적힌 병명은 대부분 급성고창증.수의사가 보기 전에 죽어있는 소는 도축장으로 절대 반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죽은 소의 반입요건을 갖추기 위해 허위진단서가 필요하다고 했다.『당연히 수의사는 무슨 병으로 죽었는지 모르지요.가끔 수의사가 하도록 되어 있는 절박도살도 직접 했습니다.』 그는 또 『목장주로선 한푼이라도 건져야되고 해서 우리가중간에서 이같은 방법으로 처분한다』고 말했다.
축산전문가들은 『인체에 치명적인 가축질병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며 『이런 식으로 허술하게 육류가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충격적』이라고 지적했다.
김기찬.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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