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로가는길>두타산 관음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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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손전등을 켜고 산길을 오르는 것도 색다른 맛이 있다.낮의 풍경이 산의 겉모습이라면 밤의 그것은 산의 속모습이다.전망대처럼반반한 바위에 앉아 능선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농담(濃淡)이 각기 달라 수묵화를 감상하는 느낌이다.더욱이 달 빛에 드러난 두타산.청옥산의 밤풍경이니….
두타산(頭陀山).우스갯말로 「머리를 무겁게 하는 산」이라고들하지만 두타란 낱말은 불가에서 나왔다.쉽게 풀자면 무소유의 정신으로 처절하게 수행하는 것을 두타행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의 10대 제자중 한 사람인 가섭존자가 바로 두타 제일이었다고 한다. 산의 이름도 좋고 풍경도 그만인데 다만 가는 길이 가팔라힘이 들뿐이다.게다가 밤길이어서 허방을 딛는 순간에는 천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말 것이고,차라리 2백여개나 되는 철제 계단과 구름다리가 나그네의 마음을 안도케 한다.저 아래 가 그 이름도 유명한 무릉계곡.
두타산의 관음암은 원래 조선초 운수승(雲水僧) 용비(龍飛)선사가 은거하던 띠집이었다고 한다.향토 사적기에 나오는 이 한 줄의 내용이 암자에 대한 기록의 전부다.그만큼 암자를 창건한 용비선사가 철저하게 두타행을 하며 숨어 살았던 증 거이리라.구름같이 바람같이 떠돌다가 가랑잎처럼 흔적없이 사라져버리는 존재가 바로 운수승이기 때문이다.
용비선사도 밤길을 오르면서 노래를 불렀을까.나그네는 숨이 차고 힘이 들므로 두타산 허공에 떠오른 달을 보며 이런 노래를 중얼거려 본다.어린 시절 자주 불렀던 동요다.「얘들아 나오너라달 따러 가자.장대들고 망태 메고 뒷동산으로….
」 노래를 몇번 불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새 「150」라는 팻말이 보이고 좀더 오르자 암자의 불빛이 나그네를 반긴다.더욱 더 다가가니 풍경 소리도 들리고,장승 옆에 있는 통나무 물통도보이고,표주박으로 대여섯 번이나 찰랑찰랑 넘치는 물 을 들이켜자 가빠진 호흡이 진정되고 땀이 식는다.그런 다음 객실에 들어어떻게 잠에 골아떨어졌는지 모른다.
『이곳은 바람도 세고 기가 센 곳입니다.암자의 기와들이 바람에 날아가버릴 정도니까요.대관령에서 동해로 불어가는 큰 바람이지요.조금만 유심히 보시면 바람이 센 터라는 것을 금세 알 수있을 겁니다.』 야심한 시각이었으므로 다음날 아침에야 만난 암주 지인(智仁)스님의 설명이다.
아닌게 아니라 바람이 센 곳이어서 그런지 암자의 기둥들이 작달막하다.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허리를 잔뜩 구부려야 할 만큼 처마가 낮다.
지위가 어떠하건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절대로 사용할수 없을 만큼 낮은 것이다.
*삼화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도보로 1시간30분 정도의 가파른산길 끝에 있다.(0394)34-8600.
글 =정찬주〈소설가〉 사진=김홍희〈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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