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한국의역군들>3.서울의대 생화학교실 서정선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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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인간의 이기심이 암을 일으킨다」.
과학의 잣대로는 증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명제에 도전하는 분자생물학자가 있다.
서울대의대 생화학교실 서정선(徐廷瑄.44)교수.그가 내세우는강력한 증명수단은 유전자 이식쥐다.
수정란 단계에서 유전자를 삽입해 특정유전자의 기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전자 이식쥐는 분자생물학계 최대 이슈로떠오르고 있는 신개념 생체모델이다.
30억쌍의 염기서열을 모두 찾아내 조물주가 창조한 인체설계도를 밝혀낸다는 인체게놈사업이나 병든 유전자를 잘라내고 건강한 유전자를 이식하는 유전자 치료법도 유전자 이식쥐를 통한 검증이없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徐교수가 주목하 고 있는 연결고리는 스트레스다.
이기심이 극대화될수록 스트레스가 커지고 스트레스가 축적될수록암에 걸릴 확률이 증가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실제 스트레스 유전자를 이식한 쥐에서 악성림프종과 같은 암이유발된다는 그의 연구결과가 지난 1월 미국의 생화학전문지 BBRC에 게재됨으로써 그의 스트레스 암유발설은 상당부분 입증됐다. 스트레스가 이기심에서 유래한다는 그의 주장도 스트레스가 더많은 파이를 확보하려는 경쟁에서 비롯됨을 감안할 때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정상의 경우 노화세포는 몸 전체를 위해 스스로 죽는 이른바세포자살을 선택합니다.하지만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스트레스 단백질이 과잉 분비돼 이들이 엉뚱하게 암세포로 전환됩니다.』 적자생존으로 대표되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적자(適者)란 투쟁심보다 평정심을 지닌 개체를 의미하며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하는 것이란 역설이 분자생물학 세계에서도 성립된다는 것이다.
그가 유전자 이식쥐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85년 암스테르담학회에서 미국 하버드대 필립 뢰더교수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유방암 유전자 이식쥐를 접하면서부터.
『바늘 끝으로 수정란을 찔러 원하는 모습의 쥐를 마음대로 구현해내는 유전자 이식술은 말 그대로 경이 그 자체였다』는 것이徐교수의 회상이다.
백지상태에서 시작한 그의 유전자 이식쥐 연구는 불과 5년뒤인90년 9월 국내 최초로 유전자 이식쥐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현재 12종의 유전자 이식쥐가 그의 손을 통해 지구상에 모습을드러냈으며 이중 상업적 가치가 높은 당뇨와 면 역결핍증 이식쥐는 이미 미국.일본.유럽연합(EU)에 생물특허를 출원중이다.과학자답지 않게 도학에 심취해 있는 그는 소문난 채식주의자이기도하다. 『유전자 이식쥐가 받는 대접은 비참하지요.30분마다 채혈을 위해 꼬리가 잘리고 주사기로 두 눈이 찔립니다.인간의 이익을 위해 최후의 한방울까지 피를 말리며 죽어가는 쥐들에 대한조그만 속죄의 표현이지요.』 기생충학 연구의 태두 고(故)서병설(徐丙卨.전 서울대의대 학장)박사가 부친이며 서울대의대 서정기(徐廷琪.소아과)교수가 그의 형이고 이화여대의대 서정완(徐廷玩.소아과)교수가 여동생이다.
홍혜걸 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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