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e-메일로 빚독촉 해도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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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충북의 가정주부 최모씨는 지난해 8월 신용카드 빚을 갚으려고 사채업자에게 80만원을 빌렸다. 선이자로 30만원을 뗀 뒤 열흘 뒤 원금 80만원을 갚는 조건이었다. 계산상 연리 2190%의 이자다. 같은 해 11월 29일 최씨가 원금 중 39만원만 갚고 연체를 거듭하자 사채업자들은 최씨를 그녀 소유 승용차(엑센트)에 태워 자동차등록사업소로 끌고가 자동차매매계약서를 쓰게 했다.

남은 41만원 때문에 500만원짜리 자동차를 뺏으려 한 것이다. 이처럼 지난해 금융감독원 사금융피해센터에 신고된 불법 채권추심 피해 건수만 450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신체 포기각서를 강제로 쓰게 하는 등의 직접적인 협박이나 폭력은 줄고 있지만 통신수단을 이용한 집요한 빚 독촉처럼 불법 추심행위도 지능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2일 금융 약자인 서민들을 불법 빚 독촉에서 보호하기 위한 ‘공정채권추심법’ 제정안을 이달 중으로 마련한다고 밝혔다. 공정채권추심법 제정은 무등록 고리 사채업자나 불법 대부업체들이 법망을 피해 채무자와 가족들을 괴롭히는 행위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목적이다. 정치권과 학계는 지난 수년간 금융 약자 보호를 위해 이 법 제정을 요구해 왔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제정안은 채권 추심행위와 관련, ^전화·e-메일을 포함한 통신을 통한 괴롭힘이나 폭행·협박행위를 금지하고 ^채무자의 신상정보 보호 ^국민 이해가 쉽도록 금지되는 채권 추심행위를 상세히 유형화하기로 했다. 이자제한법상 등록 대부업체는 연 49%, 무등록 사채업자는 연 30%로 제한된 이자율을 넘는 빚은 존재하지 않는 채무로서 추심 자체가 금지된다.

채권 추심을 하면서 법원·검찰 등의 허위 공문서를 제시하거나 채무자에게 반복적으로 수신자 부담 전화를 걸어 통신요금을 과도하게 부과하는 행위도 안 된다. 또 신용정보업자, 대부업자뿐 아니라 무등록 사채업자와 일반인 간의 채권 추심행위도 적용 대상에 넣어 ‘채권 추심 관련 기본법’을 만들겠다는 목표다.

이건태 법무심의관은 “최근 법무부가 마련한 시안에는 서민들이 금융 실생활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미국의 공정채권추심법처럼 금지되는 불법 추심행위 유형을 최대한 상세하게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법무부는 현행 대부업법 등에서 불법 채권 추심행위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돼 있는 처벌조항도 이 법에서 강화할 방침이다.

법무부는 마련된 시안을 토대로 금융위원회와 공동연구반을 구성해 해당 금지 조항들이 우리 금융 현실에 적합한지 정밀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오는 12월 제정안을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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