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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잔 빼는 가을 女心

중앙일보

입력

SF영화에 나올 법한 소재, 현란한 프린트로 시각을 자극하던 패션이 추수를 앞둔 황금들판의 벼이삭처럼 한층 의젓해졌다. 패션하우스는 ‘아 옛날이여’를 되뇌며 복고풍 스타일의 정석을 보여준다. 08 F/W 패션 트렌드를 짚어본다.

메가트렌드, 클래식

미래로, 우주로 거침없이 달려가던 패션트렌드가 U턴하고 있다. 새로운 모더니즘의 행선지는 ‘과거’. 복고풍의 현대적 재해석을 도운 키워드는 ‘클래식’이다. 요조숙녀풍의 투피스 스커트 정장, 인체의 비율을 정립하는 디자인의 원피스··. 패션 교과서라 할 만한 클래식의 전형이 총출동했다.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과 차분하고 세련된 무채색의 향연, 새로움보다는 품격을 앞세운 기본 소재···. 1960~70년대 상류층 여성의 클래식 룩을 현대적 감성으로 재해석한다.

60년대를 대표하는 재클린 케네디의 우아한 수트 룩, 허리와 엉덩이의 곡선을 살린 40년대 종 모양 실루엣이 일단 눈길을 끈다. 프라다·루이비통·발렌시아가 등 클래식 스타일을 내세운 패션하우스의 디자인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재킷의 허리부분부터 스커트로 이어지는 라인이 방울꽃을 닮은 이 실루엣은 여성의 특권인 오묘한 굴곡을 가장 이상적으로 살린 디자인이다. 코트 등 외투 위로 벨트를 둘러도 이러한 실루엣을 살릴 수 있다.

팬츠 정장을 즐기는 이라면 통이 넓은 배기 팬츠를 강력히 추천한다. 돌아온 팬츠 정장은 80년대에서 영감을 받아 넉넉한 실루엣을 자랑한다. 마치 아버지 바지를 빌려입은 듯, 허리 주름의 여유가 관건이다.

프린트의 클래식인 체크무늬 역시 주목할 만하다. 체크 무늬 코트 하나면 클래식한 분위기의 절반은 완성된다. 두툼한 모직 소재 코트에는 무늬 간격이 널찍한 타탄 체크(tartan check선의 굵기가 서로 다른 서너가지 색을 바둑판처럼 엇갈려 놓은 무늬)가 제격이다. 추천 컬러는 레드. 이 때 빨간색은 너무 밝기보다는 다소 중후함이 느껴질 만큼 채도가 낮은 것을 추천한다.

고딕 & 보헤미안 룩

중세의 매력에 파리의 디자이너들이 단단히 매료됐다. 현재 패션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랑방·지방시·앤 드묄미스터 등의 컬렉션은 약속이라도 한 듯 비밀스러운 분위기의 중세미녀를 런웨이에 올렸다. 고딕풍이라고 마냥 어둡고 음침하지 않다. 기존의 고딕풍 스타일에 비해 담백해지고 한 단계 섹시해진 느낌이다. 스타일의 비밀은레이스. 검은색 레이스는 고딕룩 뿐만 아니라 두루 활용되고 있는 아이템. 검은 레이스 사이로 살짝 살결이 비치는 블라우스나 셔츠는 가슴이 깊이 파인 옷보다 고급스럽게 섹시하다.

뉴욕이 클래식의 정수를 맛보고, 파리가 고딕풍에 주력했다면 밀라노는 보헤미안 스타일에 빠졌다. 올 봄·여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히피 패션은 보헤미안 룩이라는 이름으로 가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구찌·에트로·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앞장서 우리의 관심을 동쪽으로 인도한다. 동아시아와 동유럽의 분위기가 혼합돼 빛깔이 더욱 풍성하고 다양해졌다. 손으로 한땀 한 땀 공들인 자수 문양이나 주렁주렁 늘어지는 술장식, 모피 트리밍이 화려함을 더한다. 여름까지 열심히 입었던 히피풍의 롱 스커트나 원피스를 가을에도 잘 활용하는 요령은 모피 조끼와의 믹스매치. 야성적이고 거친 느낌의 모피가 인기를 이어갈 듯하다. 

프리미엄 심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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