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합격률 97%와 국민건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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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달 19일 치러진 약사들의 한약조제시험 합격률이 96.9%로 나왔다.이 수치는 응시하면 누구나 붙는 시험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느낌이다.아무리 자격시험이라지만 이같은 시험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만의 하나라도 이번 합격자들의 잘못된,혹은 실수에 의한 조제로 피해를 보는 환자가 생긴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운전면허시험도 아니고 명색이 국민건강을 다룰 수 있는 실력을갖췄는지 검증한다는 국가시험이 이처럼 모양새가 우습게 된 데는다 이유가 있다.무엇보다 보건복지부의 시험관리 부실이다.게다가복지부는 합격률이 이렇게 높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한 고위관계자는 합격률이 40%,잘해야 70% 정도일 것으로 기대했다고 털어놓았다.
시험에 합격한 약사들은 그들대로 어디 가서 합격했다고 떳떳하게 얘기하고 다니기도 어렵게 됐다.결국 시험문제 출제위원으로 뽑혔던 한의대.약대 교수들의 지나친 「자기편 편들기」가 이런 결과를 낳지 않았느냐는 게 복지부 안팎의 시각이다 .
양측 교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올바른 한약조제인력을 뽑으려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한의대교수들은 문제를 어렵게 내려고 노력한반면 약대교수들은 그 반대였다.
결과를 보면 출제한 약대교수는 「처음부터 쉽게 출제해 무더기로 합격시킨다」는 구상이 있었고 시험관리 당국은 이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게 돼 있다.
또한 출제당국은 의료인력 수급불균형에서 오는 부작용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추궁도 면할 수 없게 됐다.현재 약사들은 약사의 과잉공급으로 수입감소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그렇다면 한약조제 약사의 과잉공급에서 오는 문제를 출제진은 생각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출제에 참여했던 한의대교수들은 『퇴장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의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의대교수들의 퇴장으로 약대교수들의 단독출제가 가능했다.특히약사 수험생들의 한약조제 감별능력을 알아보는 실기시험에서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한의대교수들이 며칠밤을 새워서라도 대화와 타협으로 약대교수들을 설득하고 자신들의 요구사항 을 관철했다면시험결과가 이처럼 국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는 않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복지부는 최근 시험제도의 전면개혁을 발표했다.그러나 복지부가진정한 개혁의지가 있다면 관계법을 고쳐서라도 국민건강을 돌볼 의료인을 시험다운 시험을 거쳐 뽑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기평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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