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장병들 ‘고아원 사랑 60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미 해군 공병부대 장병들이 지난달 28일 경남 진해시 제황산동 진해 희망의 집에서 담장을 쌓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늦여름 뙤약볕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28일 경남 진해시 제황산동 아동양육시설인 ‘희망의 집’. 얼룩무늬 군복바지에 국방색 셔츠를 입고 작업모를 쓴 파란 눈의 이방인 10여명이 땀을 뻘뻘 흘리며 담장을 보수하고 있었다.

깨진 블록을 뜯어내고 새 블록으로 갈아 끼운 뒤 시멘트를 발랐다. 담장 안쪽 마당에서는 창고 문 수리에 사용할 판자를 자르는 전기톱 소리가 요란했다.

이들은 경남 진해에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 해군 지원부대 소속 공병대원들. 지난달 25일부터 나흘째 희망의 집 구석구석을 수리하고 있었다. 합판과 알루미늄, 시멘트 같은 자재 2000달러 어치는 부대에서 가져왔다.

작업반장 라인 스파크스(25) 하사는 “우리 손으로 고친 건물에서 어린이들이 뛰어 놀 수 있다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휴식시간에는 미리 준비 해 온 과자를 나눠주며 어린이들과 함께 놀았다.

부대원들은 이 같은 근로 봉사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선물을 들고 찾아온다. 60여명의 원생들로부터 개별적으로 희망하는 선물을 신청받아 하나씩 포장을 해 전달한다. 부대원들이 모금한 현금도 해마다 1000∼2000달러씩 잊지 않고 보내주고 있다.

미군 장병들과 한국 고아들간의 인연은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해방과 함께 진해 주둔을 시작한 이 부대는 주변에 있던 희망의 집 고아들은 돕기 시작했다.

영어에 능통했던 희망의 집 설립자 고 이약신(1898∼1957)목사가 이 부대 내 교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고아들은 몰려 들지만 먹거리가 부족하다”며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 부대는 이 무렵 몸이 허약해 한국에서 치료받기 곤란한 고아 5명을 미국에 입양 보내는 일을 주선하기도 했다. 그때 입양간 킵 도리스(50·여·노스 캐롤라이나 거주)는 96년 노스캐롤라이나 주 정부 검사인 남편과 함께 찾아오기도 했다. 한국전쟁 직후 고아들이 넘치자 57년 1월에는 360㎡짜리 건물을 새로 지어주기도 했다.

지난달 17일에는 한국해역에서 작전을 위해 진해항에 입항한 미 해군 구축함 허워드호 장병 30여명도 찾아와 청소를 해주는 등 희망의 집은 미군 장병들의 봉사의 터가 되고 있다.

이경민(52) 원장은 “희망의 집은 한·미 우호 관계를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가 되고 있다”며 “이런 좋은 관계가 앞으로 계속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 사진=송봉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