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공부방도 '용천 돕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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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소식을 듣는 순간 도무지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지난 23일 오전 평북 용천역의 폭발 참사 소식을 접한 이영철(32.연세대 2학년)씨는 그동안의 고생을 떠올리며 전율했다. 2001년 3월 차가운 두만강을 건너 국경을 넘던 일, 중국과 몽골을 거치며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지내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李씨는 "죄없이 굶어 죽던 동포들이 또 어이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이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저녁마다 나가는 '피난처 자유터학교'의 동료들을 찾았다.

서울 구로동에 있는 이 학교는 조명숙(趙明淑.34)교장이 지난해 초부터 운영하는 공부방. <본지 2003년 12월 15일자 23면> 한국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 청년들에게 자원봉사자들이 영어.한국문화 등을 가르치는 곳이다. 이들의 사랑방 역할도 한다.

26일 오후 이곳에서 만난 탈북자 崔모(20)씨도 사고 소식에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 그는 1997년 열세살 나이로 부모와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중국에서 5년여를 떠돌다 2001년 입국한 崔씨는 "남에서 이런 사고가 있었다면 적어도 약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용천 주민들을 걱정했다.

매달 1만원씩을 중국 내 탈북자 돕기를 위한 기금으로 모아 온 이들은 1만원씩을 더 내기로 했다.

탈북자 세대주에게 월 50만원 남짓 나오는 돈으로 임대료와 식비 등 생활비로 써야 하는 이들에게 1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저마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1만원권을 꺼내 모았다. 이 학교 학생 60여명은 이렇게 모은 돈 50만원을 피해 주민들을 위해 써달라며 26일 본사에 보내왔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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