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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오피스텔 '소화 불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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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분양가보다 싼 매물이 나와도 잘 팔리지 않아요." 지난 2월 입주한 서울 테헤란로 주변 강남구 대치동 D오피스텔 부근 한 부동산중개업소. 이곳 직원 李모(39)씨는 "올 들어 오피스텔 매매 중개는 두건밖에 못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오피스텔 주변 중개업소들에 나온 매물은 10여개. 대부분 분양가에 팔아 달라는 매물이다. 李씨는 "흥정만 하면 값을 더 깎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테헤란로에 오피스텔 입주가 본격화하면서 공급 과잉 후폭풍이 불고 있다. 경기 침체로 임대가 제대로 되지 않자 2~3년 전 투자 목적으로 분양받았던 사람들이 입주를 전후해 매물을 쏟아내면서 분양가보다 1000만원 이상 싼 급매물도 나온다. 하지만 오피스텔을 사려는 사람이 없어 거래는 거의 실종됐다. 덤핑 임대도 많다. 이 때문에 인근 원룸주택 시장도 동반 침체에 빠졌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와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서울 강남구 역삼.대치.삼성동, 서초구 서초동 등 테헤란로 주변 오피스텔 입주 예정 물량은 1만397실에 이른다. 지난해(1681실)의 6.2배 수준이다. 분기별로는 2~3분기에 전체의 64.8%가 몰려 있다. 중개업자들은 "상대적으로 물량이 많은 10~20평형대를 중심으로 공급과잉의 부작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달 입주하는 역삼동 D오피스텔 17평형은 분양가보다 1100만~1200만원 싸게 살 수 있다. 지난해 말 만 해도 분양가 이하에 나온 매물은 거의 없었다. 2년 전 분양 당시 업체가 중도금 무이자 대출제를 적용해 이 평형의 경우 분양가의 10%인 계약금 1300만~1400만원만 있으면 분양받을 수 있었다. 역삼동 H부동산 공인 朴모 사장은 "대출을 승계할 경우 계약금 200만~300만원만 있으면 분양권을 인수할 수 있지만 거래가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는 6월 입주하는 삼성동 S오피스텔엔 분양가 수준이거나 그 이하에 나와 있는 매물이 있다. 인근 중개업자는 "주거용 오피스텔 계약자들이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보유세 중과조치를 피하기 위해 분양권 상태에서 팔려고 하다 보니 호가가 많이 빠진 것"이라고 말했다.

입주량이 늘면서 테헤란로 일대 오피스텔 임대료도 두세달 새 5~10% 가량 빠졌다. 대치동 D오피스텔 17평형은 지난 2월 입주 당시만 해도 보증금 1000만원에 월 70만원 선이었지만 지금은 보증금은 변동 없으나 월세는 5만~10만원 떨어진 60만~65만원이다. 역삼동 A공인 관계자는 "경기 침체로 소형 오피스텔 수요층인 20대 후반~30대 초반들이 매달 내는 임대료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피스텔 임대료가 크게 떨어지면서 테헤란로 주변 원룸주택도 영향권에 접어들었다. 역삼동 B공인 姜모(42)사장은 "소형 오피스텔과 대체상품인 원룸주택의 임대료가 지난해 이맘때에 비해 10% 이상 빠졌고 비어 있는 집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치동 한 중개업자는 "오피스텔의 월세가 같은 면적의 원룸주택보다 5만원 정도 비싸거나 비슷한 수준이어서 편의시설이 잘 돼 있는 오피스텔로 많이 옮기고 있다"고 말했다. 월세가 잘 나가지 않자 일부 원룸주택 주인은 임대방식을 월세에서 전세로 바꾸고 있다. 세입자들이 전세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테헤란로 일대 오피스텔의 심각한 소화불량이 1~2년 정도 지속할 것으로 내다본다. 해밀컨설팅 황용천 사장은 "올해 입주량이 너무 많아 하반기 들어 수급 불균형이 더 심각해질 것 같다"며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공급과잉의 몸살을 앓을 것"고 말했다. 베스트하우스 고종옥 사장은 "테헤란로 오피스텔 매매가와 임대료는 당분간 약세를 보일 것이므로 투자 시기를 좀 늦추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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