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미국 대선] 가족·친구·연인 뭉쳐 “예스, 위 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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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43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민주당 후보를 지명하는 전당대회. 미식축구 응원전을 방불케 하는 전당대회는 정당 행사라기보다는 잘 짜진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페스티벌 같았다.

4일간에 걸친 대장정의 하이라이트인 후보 수락 연설이 예정된 28일(현지시간) 덴버시 인베스코필드 풋볼경기장엔 오후 3시부터 운집한 대의원·당원·시민 등 8만여 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가족과 연인·친구끼리,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데리고 와서 풋볼 경기를 보듯 참여했다. 맨 앞줄의 한 청년은 미리 준비해온 반지로 깜짝 청혼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우리 정치와 미국 정치의 본질적 차이라기보다 오히려 제도의 차이인 듯했다. 우리 전당대회는 현장 투표를 통해 후보를 결정하기 때문에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팽팽한 긴장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는 수십 차례의 주별 예비경선이나 당원대회를 거쳐 이미 사실상 확정된 후보를 공식화하는 자리다. 격전보다는 후보를 홍보하고 당원 단합을 공고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45년 전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그 유명한 연설, “나에겐 꿈이 있다”가 행해졌던 바로 그날,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 후보가 탄생함으로써 그 꿈의 한 조각이 이뤄졌다는 소개말이 오바마 후보 지명의 역사적 의미를 최대한 고조시켰다. 오마바는 1960년 케네디의 LA 콜로세움 연설 이후 48년 만에 처음으로 옥외연설 방식을 택함으로써 민주당의 영웅일 뿐 아니라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각인돼 있는 케네디 향수를 적절히 자극했다.

오바마의 후보 수락 연설에 관중은 스무 번이 넘는 기립박수와 열광적 환호로 답했다. 정치적 구호뿐 아니라 중소기업에 대한 자본이득세 폐지, 개인파산법 개정, 동일 노동에 대한 임금 격차 해소 등 구체적인 공약들에 환호하는 모습은 매우 이색적이었다.

8년간 부시 행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이든 미래를 위한 변화의 열망이든, 이런 오바마 열풍이 바람에 그치지 않고 열매를 맺는 것은 치열했던 경선 후유증을 극복하고 당내 단합을 이뤄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듯했다. 힐러리 지지자 외에도 레이건계 민주당원들도 이탈하고 있는 상황에서 “애송이에다 국정 운영 능력이 없다”는 공화당의 집요한 공격을 46세의 초선 상원의원이 잠재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힐러리의 경선 승복과 빌 클린턴의 강력한 지지 선언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지지자 중 11%가 공화당 후보인 매케인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아직도 승자의 포용과 배려가 부족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8년 전 민주당은 앨 고어 후보가 투표에서는 이기고 선거에선 져 분루를 삼킨 아픈 기억이 있다. 이번엔 꼭 집권할 수 있다는 다짐을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듯 존 레전드의 노래에 맞춰 8만여 관중은 “그래요, 우린 할 수 있어요(Yes, we can)”를 발을 구르며 신들린 듯 외쳤다.

◆이혜훈(44·사진) 의원=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UCLA 경제학 박사. 미 랜드(Rand) 연구소 연구위원, 영국 레스터대 교수 역임. 한나라 당내 경제통으로 17, 18대 총선에서 당선한 재선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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