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월드컵>4.의식개혁 캠페인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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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7월18일 오후8시50분 대전구장에서는 프로야구 한화-롯데전이 열리고 있었다.
3-2로 뒤진 홈팀 한화의 8회말 공격.롯데 투수의 1루주자견제구가 악송구되는 바람에 주자가 3루로 뛰었다.주자와 거의 동시에 공도 3루수에게로 송구됐다.3루심 박찬황(朴贊黃)씨는 아웃을 선언했다.한화 감독이 판정에 불만을 품고 경기중단을 선언하자 흥분한 관중 1백여명이 경기장으로 뛰어들었다.이들은 두패로 나뉘어 집단 난투극을 벌이고 朴씨를 폭행했다.이날 경기장에는 H사 초청으로 내한한 미국인 30여명도 있었다.이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운동경기가 이뤄 지는게 신기하다』며 『한국은 위험한 나라』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미국 관중들의 관람 태도는 과연 어떤가.
지난 1일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미국 프로농구(NBA)의 서부지역 수위 결정전 6차전이 열렸다.
이날 경기는 팽팽하던 균형이 3쿼터부터 무너지면서 홈팀 유타재즈가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118-83으로 눌러 3승3패 동률을 이뤘다.압도적인 수의 홈팀 관중들은 상대방이 골을 넣거나 묘기가 나올 때도 동물모양이 그려진 풍선을 흔들 며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경기 관람 질서와 외국 관광객을 대하는 태도에 일대 의식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제 규모나 경기장.숙박시설등 이른바 하드웨어는 뒤질 것이 없지만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국민의식 수준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전문가들의 평가다.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강신복(姜信福)교수는 『경기장 질서는 국민의식의 척도』라며 『네편 내편을 갈라 광적으로 응원하기보다 상대팀이라도 페어 플레이를 하면 박수를 보내는 성숙한 태도가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외국인과 자주 마주치는 호텔등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도 수준 이하다. 지난달 30일 서울강남구역삼동 르네상스호텔 프런트 앞에서는 호주 관광객 50여명이 조용히 줄서 투숙절차를 밟고 있었다.순간 슬리퍼를 신은 한국인 손님 5~6명이 『한마디만 묻자,잠깐이면 된다』며 새치기를 했다.관광객들은 미간을 찌 푸리며 어이없어 했다.
호텔신라의 프랑스식당 라콘티넨탈 종업원 송창영(宋昌映.28)씨는 『점잖은 정장차림의 손님들도 종업원을 큰소리로 「여봐」등으로 불러 주위를 놀라게 한다』고 말한다.
지난달 관광을 위해 입국한 영국인 제임스 터너(33)는 택시를 타고가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영어를 못하는 택시기사는 민방위 훈련이 시작됐지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못하고 차를 세웠다.그는 전쟁이 터진줄 알고 놀랐다.
호주의 관광안내책자 『론리 플래넷』의 한국 소개판에는 민방위훈련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그러나 국내 관광책자 어디에도 이에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내일여행사 김시환(金始煥.28)홍보주임은 『서울에서 관광객이영어 이외의 외국어로 안내를 받을 수 있는 곳은 한국관광공사 앞에 있는 안내소 한곳뿐』이라며 『한국은 한마디로 외국인을 위한 관광정보의 사각지대』라고 말했다.
시민네트워크 이덕승(李德昇)부장은 『일본에 비해 한국인의 의식수준이 형편없이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 월드컵이 될까봐 걱정』이라며 『마냥 들떠있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의식개혁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진.이승녕.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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