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표화랑,미국 존 발데사리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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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예술가는 개성이 강하다 못해 괴팍한 사람이라고 흔히 생각한다.광기어린 삶과 작품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예술작품을 보면서 이들의 강렬한 개성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의 개성을 작품 안에서 완전히 없애는 것을목표로 하는 작가들도 있다.
4일부터 25일까지 서울강남구신사동 표화랑에서 전시하는 미국작가 존 발데사리(65)가 바로 그런 사람의 하나다.
발데사리는 넘쳐나는 감정을 그대로 화면 안에 분출시켜 표현하는 추상표현주의의 대가 잭슨 폴락과는 철저히 반대되는 사람이다.작업 중인 모습을 담은 폴락의 사진을 흰색으로 지워 개성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이 작가를 풍자하는 작품까지 만 들 정도다.
발데사리는 70년대 개념미술의 주역이다.
완성된 작품 자체보다 아이디어나 과정을 예술로 보는 반미술적경향인 개념미술은 주로 문자와 사진을 매체로 이용한다.발데사리도 이런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초기작들은 아무 형상없이 순전히 글만으로 구성해 언어학적인 관심을 드러낸 반면 뒤로 갈수록 점차 문학적인 내용이 강조된다.영화.TV의 스틸사진이나 신문.잡지의 스냅사진 등을 자르고 재구성하는 방식은 8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는 기존의 사진을 재구성해 만들어낸 이 새로운 이미지 위에네모.동그라미같은 기하학적 무늬의 색면을 덧칠함으로써 개성을 배제한다.여기서 빨강.노랑.초록 등의 원색은 밋밋한 사진에 조형성을 더해주는 기능 외에 강한 상징성과 익명성을 가진다.빨강은 위험,노랑은 광기,초록은 평화와 희망 등을 뜻한다.리얼리즘을 가진 사진 위에 색을 칠해 비현실적으로 바꾸는 효과를 만드는 것이다.이런 상징으로 얼굴이 가려진 인물은 익명성을 나타낸다. 이번 전시에는 70년대부터 시작된 이런 경향이 점차 심화된 형태를 띠는 90년대 작품 11점을 선보인다.최근으로 올수록 점차 사진패널이 많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한 작품에 14개의 패널이 이어져있는 대작도 포함돼있다.
개념미술의 「개념」을 확실하게 심어주는 전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02)543-7337.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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