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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청와대 참모들, 자기들만 독야청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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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시절 소통령·대(代)통령으로 불렸던 'DJ 심복' 박지원 의원이 21일 민주당에 복당했다. 복당 후 중앙SUNDAY와의 첫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이명박 대통령 주변의 청와대 참모진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감옥에서 인고의 세월을 보내면서 '세 놈'을 손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하지만 이젠 모두 용서했다고 한다. 그의 얘기는 거침없이 이어졌다.

얼굴은 매우 좋아 보였다. 감옥에 있을 때의 그가 아니었다. 정치권에 돌아온 그는 활기가 넘쳐 있었다. 민주당 박지원(66) 의원. 김대중(DJ) 정부 때 2인자ㆍ소통령으로 불렸던 그는 DJ의 ‘심복이자 복심’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장세동이 있다면 DJ에겐 박지원이 있다. 그가 21일 민주당에 복당했다. 바로 다음날인 22일 오전 ‘민주당 의원 박지원’으로서 중앙SUNDAY와 첫 언론 인터뷰를 했다. 장소는 의원회관 615호실. 6ㆍ15 남북 정상회담은 그의 과거이자 현재였다. 먼저 감옥 얘기부터 꺼냈다. 장대비가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감옥, 동물은 다 자살할 것
-어떻게 지냈나.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감옥으로, 병원으로. 재판받는 재미로 살았다, 허허.”

-2년 가까웠던 감방 생활은 어땠나.
“얼마 전 목포 바닷가에 나갔다가 보름달을 봤다. 사람들은 ‘야, 아름답다’고 했지만 나는 소름이 쫙 끼쳤다. 감옥 창살 틈으로 바라본 보름달이 생각났다. 감옥…, 사람이니까 살지 동물이면 다 자살할 것이다. 밤에 독방에 혼자 있을 때 보름달을 보면 눈물이 안 날 수가 없다. 한번은 김근태 장관이 면회를 왔는데 내가 웃고 나오니까 어떻게 20년 구형을 받고 웃고 있을 수 있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이건 위장 미소라고 했다. 너무 억울해 가슴이 터질 정도였다. 결국 하느님과 가족만 남더라. 집사람이 매일 미사책을 영치시켜 주면 아침마다 40분씩 홀로 미사를 봤다. 성경책도 두 번 반 통독했다.”

-결국 용서는 했나.
“그럼요. 다 용서했다.”

-잊을 순 없지 않던가.
“감옥 동료가 이런 말을 했다. 거물들이 들어오면 ‘꼭 나가서 세 놈을 손보겠다’며 이를 간다는 것이었다. 나도 몰래 ‘억!’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나도 세 사람이었다…. 그 친구 말이 ‘그 세 사람도 용서하니까 나가더라’고 했다. 나는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서도 그 세 명은 아직도 용서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방으로 돌아와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런데 조금 뒤 주임 교도관이 오더니 대법원 선고 날짜가 다음주로 잡혔다고 알려왔다. 모두 용서하니까 하느님이 축복을 주시는구나 싶었다.”

그 세 ‘놈’이 누군지는 묻지 않았다. 그의 ‘용서론’은 계속됐다. 목소리는 낮게 깔렸다.
“지난해 2월 특별사면은 됐는데 복권은 안 됐다. 그래서 내가 사흘 내내 노무현 대통령을 대놓고 욕하고 다녔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귀가하다가 살짝 넘어졌는데 양쪽 무릎이 다 깨지고 오른손은 깁스를 하게 됐다. 밖에 나와 편하니까, 사면도 고마운데 복권 안 해줬다고 욕하니까 벌을 받는구나. 그 순간 다시 회개하고 모두 용서했다. 이젠 아무도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

-최근 노 전 대통령을 본 적 있나.
“지난해 10월 DJ와 함께 초청받아 뵌 게 마지막이다.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오찬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서들에게 쓰는 수행이란 표현 대신 나에게는 동행해 주시면 자기도 배석하겠다고 하더라. 그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말씀을 한마디 하셨는데 아직 공개할 때는 아닌 것 같다.”
감옥 얘기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 현실정치로 돌아올 때였다.

국정엔 연습이 없다
-이명박 정부를 어떻게 평가하나.
“나는 야당도 해봤고 집권세력으로 청와대에서도 일해 봤다. 대통령만 안 해 봤다는데 대(代)통령도 해봤다(웃음). 그런데 대통령이 실패하면 나라가 망하더라. 외환위기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라가 산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하지만 황금 같은 인수위 2개월과 취임 후 6개월, 너무나 중요한 8개월을 허송세월했다. 올림픽은 연습하고 나가지만 국정은 연습이 없다. 없어진 8개월을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없어질 5년을 막기 어렵다.”

-이젠 정말 잘해 보겠다고 하지 않나.
“많은 국민은 아직 염려가 많다. 무엇보다 대통령께서 검토되고 정제된 용어를 쓰시는 게 필요하다(그는 ‘께서’와 ‘-시’라는 존칭형을 썼다). 비서실과 내각도 좀 더 신중하게 대통령을 보필해야 한다. 올림픽 때 태극기 사건이 단적인 예다.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금강산 사건이 터진 직후 남북 대화를 제안하는 국회 연설을 한 데 비판이 일자 청와대 비서진이 뭐라고 했느냐. 수석들은 반대했는데 대통령이 가서 말씀하셨다고 하지 않았느냐. 대통령 중심제에서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마뱀도 몸통을 살리기 위해 팔과 다리를 잘라 내는 아픔을 견딘다. 그런데 지금의 참모들은 모든 걸 대통령에게 떠넘기고 자기들은 독야청청하고 있다.”
그는 역시 타고난 비서였다. 이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자제했다. 대신 참모들을 정조준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모든 대통령에겐 ‘동지’가 있었다. 그들은 몸을 던져 대통령을 보호했다. 지금은 어떤가. 무슨 일이 터지면 자기부터 생각하고 있지 않나. 대통령 주변에 희생할 사람이 안 보인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대통령께서 강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래야 기강이 잡힌다. 읍참마속하고 일벌백계해야 앞으로 남은 4년6개월을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다. 올해 나온 대통령 측근들의 언론 인터뷰를 빠짐없이 읽었는데 내 상식으로는 깜짝 놀랄 얘기가 너무 많았다. 대통령과 나눈 얘기를 저렇게 다 공개하면 대통령과 가깝다는 걸 자랑할 수는 있겠지만 읽는 국민은 불안할 뿐이다.”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다.
“우려하면서도 희망을 갖고 있다. 지금의 대북정책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6년간 쓰다가 실패한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누가 뭐래도 보수정권이다. 보수정권은 항상 미국과 궤를 같이한다. 그런데 왜 꼭 미국의 실패한 정책을 따라가느냔 말이다. 지금 미국이 성공적으로 추진하는 정책과 함께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도 지금은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지만 결국엔 온탕에 들어앉을 것으로 본다. 그게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실용주의에도 맞다.”

-한나라당에 한마디 한다면.
“‘내 탓이오’ 해야 한다. 거여(巨與)이잖은가. 남 탓은 이제 그만했으면 싶다. 우리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보릿고개를 극복한 업적을 한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

-민주당은 잘하고 있나.
“민주당은 지금 네 가지가 필요하다. 정체성ㆍ정책ㆍ인물ㆍ투쟁력이다. 민주당은 좋은 역사와 좋은 정책, 좋은 업적을 갖고 있지만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돼 있지 않으니까 지지도가 낮은 거다.”

-정체성이란 게 대체 뭐냐.
“좋은 정체성은 원내에서 나온다.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일하라고 뽑아줬지 광화문에서 촛불 들라고 뽑아준 게 아니다. 야당의 가장 강력한 투쟁 장소는 국회다. 촛불시위의 정체성은 민노당일 거다. 우리 민주당은 의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게 정체성이다.”

-민주당이 이렇게 헤매는 이유는.
“남북관계와 중산층ㆍ서민 문제에서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해 줘야 한다. 금강산과 독도 사태 때도 분리 대응하라며 제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가 총체적 실정을 거듭하고 있는데 저래서 야당이 있어야 하는구나, 이래서 민주당이 희망일 수 있겠구나라는 걸 국민이 느끼게 해줘야 한다.”
그의 비판은 청와대와 여야를 넘나들었다. 이제 그 자신의 얘기를 들어볼 때가 됐다.

킹 메이커? 정치는 생물!
-왜 정치권에 다시 돌아올 생각을 했나.
“DJ를 따라 청와대에 들어갈 때는 앞으로 정치는 하지 않고 임기가 끝나도 계속 대통령을 보필하겠다고 맘먹었다. 그런데 대북 송금 특검으로 인고의 세월을 보낸 뒤 주위 상황이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오도록 권했다. 나도 나가고 싶었다. DJ도 나가 보라고 했고. 이명박 정부의 꼬일 대로 꼬인 남북문제를 푸는 데 조금이라도 역할을 하고 싶었다.”

-킹 메이커를 꿈꾼다는 얘기가 많다.
“(박 의원 특유의 알 듯 말 듯한 미소를 잠시 지은 뒤)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나의 노력을 국민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문제지 지금 내가 뭐라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일단은 사람을 키우는 게 급선무다. 외부에서 발탁해 데려오기라도 해야 한다. 고건이 그랬고 조순이 그랬지 않나.”

-DJ는 왜 박 의원을 좋아하나.
“나도 때때로 야단 많이 맞는다(웃음). 지금도 수시로 보고를 한다. (글씨가 또박또박 깨알같이 적힌 수첩을 보여주며) 그냥 보고만 하면 심부름꾼이겠지만 대안을 갖고 얘기하면 토론을 통해 결론을 내릴 수 있어 좋아하신다. 지금도 왕성하게 독서하고 신문도 ‘거기에 진리가 있고 세상이 있다’며 빼놓지 않고 다 보신다. 중앙SUNDAY도 일요일 아침마다 꼼꼼히 읽고 계신다.”

-DJ는 건강하신가.
“일주일에 세 번 투석하는데 아주 건강하시다. 투석한 지 5년이 되면 대개 혈관이 안 좋아진다는데 검사했더니 깨끗했다. 19~21일 DJ 내외분과 우리 부부가 함께 변산반도로 여름 휴가를 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바다 구경도 하며 푹 쉬다 왔다.”
-DJ 대리정치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적잖다.
“내가 잘못하면 책임이 DJ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부담이 크다. 식당에 가서도 늘 조심한다. 그래도 문제가 있으면 내 책임으로 봐 달라.”

그는 “오랜만에 여의도에 돌아오니(그는 재선 의원이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더라”고 했다. 관행도 많이 바뀌어 굉장히 낯설다고 했다. 그의 컴백이 ‘올드 보이의 귀환’으로 비춰지지 않으려면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그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 평가의 첫 단추는 단순한 비판을 넘어 손에 잡히는 그만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보다 겸손하게, 그러면서도 또렷하게 말이다.

박신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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