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택의 자동차 디자인 읽기] ‘포르테’에 담긴 기아의 DNA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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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의 디자인 수장, 피터 슈라이어에겐 어떤 느낌이었을까? “세 개의 영문자로 만들어진 매우 단순한 이름이었어요. 전 세계 자동차 회사 이름 중에 가장 단순할 거예요. 단순하고 강하고 빠르게 다가오죠. 지금와서 다시 지어도 그만한 이름을 찾기 힘들 겁니다. 너무 동양스럽지도 않고, 세계적이기까지 한 이름이 참 좋아요.”

그는 유리컵 속에 담긴 차가운 생수 같은 이미지로 기아라는 이름을 기억했다. 우리처럼 복잡한 추억은 아니었다. “그런 느낌이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줬어요. 직선적인 것, 단순한 것은 나의 철학과도 같았거든요. 디자인을 하면서 지금도 계속 묻는 게 ‘어떻게 하면 더 단순하게 만들까’예요.” 그 느낌 그대로 살려서, 그는 ‘포르테’를 스케치했다. 기아라는 세 영문자가 주는 단호하고 강렬하면서 역동적인 느낌, 너무 동양적이지 않은 세계적인 느낌으로 포르테를 디자인한 거다.

“기아차에겐 유산과 역사가 모두 부족해요. BMW나 폴크스바겐, 재규어처럼 긴 역사를 갖고 표현한다는 건 요즘 같은 세계화 시대에 상당한 장점이에요. 우린 그걸 만들고 있어요. 기아만의 DNA 말이죠. 지난 2년 동안 씨앗을 뿌리는 마음이었어요. 한 5년 지나면 확실한 윤곽이 보이지 않을까요?”

디자인에 있어 DNA란 것은 시간이 지나도 항상 반복된다는 걸 의미하는 동시에, 일관되고 공통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을 포함한다. 콩팥처럼 둘로 나뉜 BMW의 키드니 그릴이 그랬고, 라디에이터 그릴을 버릇없이 가로지른 볼보의 아이언 마크가 그랬다. 그가 구체적으로 언급한 기아의 DNA는 포르테에 모두 들어 있었다. 단호한 직선이 주를 이룬 역동적인 실루엣에 호랑이 입처럼 생긴 라디에이터 그릴이 자랑스럽게 박혀 있고, 실내에는 붉은 문자와 그래픽이 ‘밤길 조심해’라고 귀띔해 준다. 모닝이나 모하비처럼 뒷부분이 깎여 올라간 측면 유리창은 포르테에선 그려지지 않았지만, 그랜저를 기본으로 만든 차세대 대형 차는 그 느낌을 여지없이 살려 더욱 기아적인 차로 태어날 예정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모든 차종이 한 가지 이미지로 정리되는 것처럼, 각 차의 이름도 벤츠나 BMW처럼 영문과 숫자로 단순하게 조합되어 통일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기아라는 독보적인 브랜드를 중심으로 모든 이미지와 성능, 이름까지도 집중돼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한국이라는 배경, 그 속에 담긴 기아차의 추억이 무시당한 것 같다는 우려에 대해 그가 말했다. “기아는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예요. 수출하는 차가 더 많아요. 한국을 위한 차도 좋지만 한국만을 위해서 디자인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장진택 월간GQ 차장(전 기아차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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