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러닝 메이트 바이든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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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47) 상원의원의 러닝 메이트(부통령 후보)가 된 조지프 바이든(65) 상원의원은 6선의 중진이다. 1972년 11월 약관 29세의 나이로 상원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된 뒤 35년 8개월 동안 상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상원 외교위원장인 그는 상원에서 최고의 외교통으로 꼽힌다. 외교·안보 분야가 특히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오바마가 그를 선택한 건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그의 식견과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연방 하원의원 재선, 상원의원 4선 경력의 공화당 대통령 대통령 후보 존 매케인(72)이 외교·안보 문제에 강하다는 걸 의식한 결정인 것이다. 바이든은 최근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한 직후 후 미하일 샤카슈빌리 그루지야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그루지야를 방문했다.

오바마는 그루지야 사태가 발생했을 때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고, 매케인은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단호하게 응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 대조를 보였다. 매케인이 최근 몇몇 여론조사에서 오바마를 추월한 것으로 나타난 건 그루지야 사태에 대한 대응 태도 때문이라는 미 언론의 분석이다. 오바마가 바이든을 고른 것은 이런 여론의 흐름도 염두에 뒀다고 볼 수 있다.

바이든은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서 워싱턴 DC의 상원까지 통근한다. 이런 습관은 1972년 선거 직후 아내와 생후 수개월 밖에 안된 딸을 잃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당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내는 3명의 자녀와 함께 쇼핑을 가다 큰 교통사고를 당해 숨졌다. 두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바이든은 입원한 아들 보와 헌터의 곁을 매일 지키며 간호를 했다. 상원의원 선서도 두 아들의 병실에서 했다.

바이든은 아들들이 퇴원한 뒤에도 아내 대신 그들을 돌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약속을 지켰다. 상원에서 회의가 밤 늦게까지 열려도 결코 외박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열차를 이용해 의사당과 집을 오가고 있다.

바이든의 이런 모습은 지역 유권자와 다수 대중을 감동시켰고, 1987년 그가 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든 발판이 됐다. 그가 윌밍턴 열차역에서 경선 출마 선언을 한 것도 대중의 동정을 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는 경선에 나가지 못했다. 경선을 준비하면서 한 연설이 영국 노동당 닐 키녹 당시 당수의 연설문을 표절한 것으로 밝혀졌고, 시라큐스 법과대학원 시절 다른 논문을 베껴 F학점을 받은 사실 등이 드러나자 87년 9월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그는 올해 초 경선에 나갔으나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1%의 지지 밖에 얻지 못하자 다시 중도하차했다. 바이든은 지난해 초 오바마에 대해 "정확히 발음하고 총명하며 청결한 데다 용모가 준수한 최초의 주류 흑인(the first mainstream African-American)"이라며 "그런 흑인은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얘기"라고 말했다. 여기엔 대다수 흑인은 발음이 부정확하고, 미련하며 지저분한 용모를 갖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파문을 일으켰다. 오바마는 이 말을 문제삼지 않겠다고 했으나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의 발언을 '2007년 선거캠페인 말 실수 톱 10' 중 두번째로 올려 놓고 있다. 공화당도 앞으로 이 발언 등을 공격거리로 삼을 게 틀림없다.

바이든은 1977년 교사였던 질 트레이시 제이콥스와 재혼해 딸을 낳았다. 그는 1988년 이후 두차례의 뇌 동맥류 진단을 받았으나 수술을 받고 완쾌했다.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튼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바이든은 델라웨어 대학에서 역사와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시라큐스대학 법과대학원을 졸업했다.

덴버=이상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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