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 던져 일했는데 … 동료 3명 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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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굵은 비가 내린 22일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 사고로 순직한 고 조기현·김규재 소방위와 변재우 소방교의 합동 영결식이 서울 녹번동 은평초등학교에서 치러졌다. 고 변 소방교의 어머니 최매자(67)씨가 아들의 영정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고인들의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사진=김태성 기자]

22일 오전 9시 서울 은평초등학교.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 사고로 순직한 소방관들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식이 끝난 후 운구차는 이들이 근무했던 은평소방서로 향했다. 소방관들이 건물 밖에서 순직한 동료들을 맞았다. 모두 가슴엔 검은 리본을 달고 있었다. 이승기(46·사진) 소방장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는 “7년 전에도, 이번에도 동료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 소방장은 2001년 홍제동 다세대주택 화재에서 극적으로 구조됐다. 무너진 건물더미에 깔려 왼쪽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7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뛰지 못한다. 그 사고로 동료 6명이 숨졌다. 이 소방장은 사고로 기억을 잠시 잃었다. 사고 당시는 물론 이후 3~4개월간 일어난 모든 것에 대한 기억이 없다. 몇 달 동안은 주변 사람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2년간 재활을 마치고 현직에 복귀했다. 주변에서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불면증에 시달린다. 사소한 것에도 화들짝 놀랄 때가 많다. 이 소방장은 “매년 동료의 기일에 현충원에 가지만 (기억이 안 나) 유족들과 나눌 대화조차 없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는 “7년이 지났지만, 유족들에게는 여전히 어제 일처럼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했다.

이번 화재가 일어난 20일 이 소방장은 비번이었다. 비상이라는 연락이 와 바로 복귀했다. 하지만 이미 동료 3명이 숨진 뒤였다. 홍제동 사고까지 모두 9명의 동료를 잃은 셈이다. 이 소방장은 “조기현은 내가 아플 때 찾아와 줬고, 김규재는 부인이 하는 피자 가게에 동료와 함께 가기도 했고, 변재우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내색하지 않는 속 깊은 친구였는데…”라며 한 명 한 명을 되새겼다.

“출동하면 언제나 자기 몸을 내던질 정도로 소명의식이 높은 이들이었어요. 그런 동료가 희생돼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 소방장은 “소방관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아플 때 고생한 가족을 위해 끝까지 내 일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복귀 후 아직 현장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임무는 ‘진압대원’이다. 이 소방장은 “동료의 배려로 화재 현장에는 가지 않고 있다. 완전히 나아 하루빨리 현장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방장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가족과 동료라는 고마운 존재 때문에 사고 후 내 삶은 더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했다.

이 소방장은 “먼저 간 친구의 아이들이 아빠의 희생을 잊지 않고 잘 자라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제적 지원과 법률적 개선도 절실하지만 이들의 희생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라를 위해 일하다 그런 것인데 모두가 쉽게 그들을 잊는다”고 아쉬워했다. “소방관은 막상 불을 만나면 자신의 안전보다는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한 명이라도 희생을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죠. 그러다 보면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돌아보지 못합니다.”

소방서에 잠시 머물던 운구차는 화장을 위해 성남의 한 화장장으로 향했다. 오전부터 내리던 빗발은 더 굵어졌다. 이 소방장은 동료들을 실은 운구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발을 떼지 못했다.

글=정선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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