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독일의 두 천재, 우리를 배꼽잡게 하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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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세계를 재다
다니엘 켈만 지음
박계수 옮김, 민음사, 320쪽, 1만원

18세기 말~19세기 초 독일은 극과 극의 성격을 지닌 위대한 지식인 둘을 냈다. 하나는 지리학자이자 탐험가였던 알렉산더 폰 훔볼트. 또 한 명은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였다. 독일의 젊은 작가 다니엘 켈만(33)은 백과사전이나 학술서에 딱딱한 문체로 박제되어있는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캐릭터를 구현하는 방식이 유들유들하고 능청스럽다.

세상을 발로 뛰며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을 훔볼트는 탐험길에 무엇이든 측정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항해 도중 태풍을 만나자 뱃머리에 매달린 채 파도의 높이를 재고, 적도 부근을 탐험하면서는 원주민의 머릿니를 센다. 연못에서 우연히 전기뱀장어를 발견한 뒤 충격의 정도를 몸 바쳐 측정하는 부분에선 웃지 않을 수 없다.

“뱀장어를 두 손으로 잡거나 한 손에는 뱀장어를 다른 손에는 금속을 쥐고 있으면 효과는 배가된다.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뱀장어를 만져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에 두 사람은 동일한 순간에 동일한 강도로 전기 충격을 느낀다.”

가우스는 나다니는 건 죽어라 싫어하고 방안에 틀어박혀 머리로 세상을 재는 쪽이다. 그러던 그가 말년에 토지측량 작업에 나선다. 못생긴 마누라(가우스는 첫 아내와 사별하고 얼떨결에 재혼했다)가 있는 집에 가기 싫어서였다. 첫 아내는 매력적이었다. 먹여 살려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될 만큼.

“공작이 말했다. 결혼이란 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거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가우스가 말했다. 그래서 저는 세레스성(화성과 목성 사이의 소행성)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당시 가우스에게 천문학은 수학보다는 “좀 더 실용적인 일”이며 “평범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문제”였다는 게다.

천재라 불리는 이들이 일상에선 오히려 우스꽝스러워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작가는 간파했다. 다만 “독일 사람들은 유머를 모른다”거나, “프랑스인은 외국어로 된 책을 읽지 않는다”는 등의 ‘유럽식’ 유머가 우리 독자에게 살갑게 와닿을지는 모르겠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에 대한 반성·통일 등에만 매달린 독일 문학엔 ‘농담’이 통하지 않았다. 다니엘 켈만은 능청스런 유머로 그런 독일 문학의 엄숙주의에 파문을 일으킨 작가다. 이 소설은 2005년 발표 후 100만 부가 판매됐다. 비교 대상이 되기엔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이래 가장 많이 팔린 독일 소설이란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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