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총체적 재점검 요구되는 북핵 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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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이 오리무중에 빠졌다. 신고된 북한 핵시설과 물질에 대한 검증 방법을 놓고 북한과 미국이 두 달 가까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핵보유국의 지위를 갖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협상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검증과 관련한 북·미 입장은 상당히 어긋난다. ‘2·13 합의’에 따른 ‘완전한 핵신고’에는 철저한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은 합의문에 ‘검증’에 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미국이 요구하는 ‘검증 체계’에 입각한 검증은 자신들의 의무사항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군사시설 등 신고하지 않은 시설에 대한 검증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핵 신고 내용 자체도 부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포함해야 할 핵폐기물 저장소도 군사시설이라는 이유로 제외시켰다. 북한 협상 대표들은 “한반도 비핵화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북한의 자주권”이라고 언급했다 한다. 물론 불능화 등의 성과가 있다고 하지만, 현재 협상의 논의 대상은 ‘핵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이 사안만 갖고도 이렇게 지지부진하다면 진짜 ‘핵무기’는 언제 거론될지 막막할 뿐이다. 결국 북한은 핵폐기 의지가 없고, 국제 상황은 북한 핵보유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된다.

한국 정부로선 이런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지금부터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미(對美)·대중(對中) 외교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25일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가 북한 문제라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밝혔다. 시의적절한 판단이다. 다만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는 레토릭에 연연하기보다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효과적 역할을 유도할 수 있는 실질적 대책을 찾아야 한다. 미국과도 긴밀한 협의는 하되 미국의 북핵 폐기 의지 여부에 대해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북핵 폐기보다 핵의 해외 이전을 더욱 중시하는 기미가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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