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이 삼촌의 꽃따라기] 해녀의 눈물이 꽃이 되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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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가?” 제주도에 너무 뻔질나게 드나드는 게 아니냐는 어머니의 말씀이다. 당신이 낳았지만 참 특이한 놈이라고 어머니는 이 둘째 아들을 희한해하실 게다. 젊어서 불가피한 사정으로 아기를 몇 번 뗀 적이 있는 어머니는 절에 다니며 정성 들여 기도하신다. 아름다운 꽃이나 풍경 앞에 섰을 때 나는 세상의 빛을 보게 해준 어머니에게 감사한다.

나는 제주도에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도움을 주는 분이 하나 있다. 그는 나를 위해 식물의 자생지를 알아두곤 하시는데 이번에는 바닷가에서 해녀콩(사진)을 발견했다고 알려왔다. 새로운 식물을 보는 것은 기쁘지만 도감에서 미리 본 해녀콩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갔다. 그를 만나 땡볕 아래서 황근과 문주란을 찍어대며 등판에 땀 좀 흘렸다. 그가 갯대추와 해녀콩이 함께 자라는 곳으로 안내했다. 해녀콩의 자생지로 알려진 북제주군이 아니라 남제주군 쪽이었다. 해녀콩의 실물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반해버렸다.

예상과 달리 해녀콩은 꽃이 큼직하고 생김새는 ‘동부’라는 콩 종류와 비슷하지만 예쁜 연분홍 살빛이었다. 3출엽의 넓적한 잎이라든가, 바닥을 기며 뻗어가는 모양새가 꼭 칡넝쿨처럼 생긴 덩굴식물이었다. 열매도 크고 두꺼워서 거의 휴대전화 크기만 했다.

그가 들려준 해녀콩에 얽힌 사연을 듣고 가슴 아팠다. 물질로 먹고사는 해녀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면 독 성분이 있는 해녀콩을 삶아 먹고 아기를 떼곤 했단다. 그런데 얼마만큼을 먹어야 할지 몰랐던 탓에 그만 목숨을 잃는 해녀도 있었다고 한다. 아, 그래서 이름이 해녀콩이었구나. 해변에서 자라기 때문이 아니라 해녀의 애환이 담겨 있어서 붙은 이름인 것이다. 제주도를 떠나오는 배 안에서 시 하나 끼적여봤다.

<해녀콩>

세상 바다빛도 못 보고 죽은/ 우리 아기 귀가 이리 생겼을까/ 소리라도 들으려는 듯/ 생기다 만 귓바퀴에 실핏줄이 어리네/ 쓰다듬으면/ 살결 고운 꽃/ 지고 난 자리마다/ 꼬투리 안에서 태아처럼 영그는/ 그 씨앗으로 내가 죽인 내 뱃속 아기가/ 꽃몸으로 피어났네/ 태몽마저 지우고 물질에 나선 길이 서러웠을까/ 독기 덜 풀린 제 어미 다리 알아보고/ 탯줄처럼 휘감기는 덩굴/ 나눠 갖고도/ 혼자뿐인 목숨이라 운다/ 거기 살 떨어져나간 내 어린 꽃아

어머니께 해녀콩 이야기를 해 드리면 무슨 생각을 하실까?

글·사진 혁이삼촌 이동혁 http://blog.naver.com/freebo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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