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5월 광주 어디로 가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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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5월의 광주는 아직 슬프다.무등(無等)에는 철쭉이 핏빛으로 타오르고,망월동과 금남로에선 「5월의 노래」가 그날의 아픔을 되살리고 있다.5.18특별법이 제정된 오늘의 시점에서 광주항쟁16주기를 맞는 광주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그동안 광주사람들은 5.18학살자를 구속하라고 목이 쉬도록 외쳐왔었다.그리고 그들은 지금 감옥에 있고 재판이 진행중이다.그들은 한때 「우리에게 피로써 두려움을 가르쳤으며 무참히 꽃들을 꺾었다」.그러나 우리는 지금 길고 암울했 던 두려움의 터널을 지나 민주제단 위에 「광주부활」이란 찬란한 꽃을 피워냈다.
오늘,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광주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다. 광주의 고민은 무엇이고 희망은 무엇인가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광주사람들은 아직 무엇인가 허전하고 목이 마르다.
그래서 광주는 변화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아니 광주는 변해야 한다.민주성지의 시민이라는 자긍심속에 일말의 자괴감 (自愧感)을 느끼는가 하면 5.18학살자 구속이라는 승리감 속에서도 막연한 불안감을 안고 있다.진보적 외침속에 보수의 속삭임이,찬란한 현실속에 암담한 허무가 도사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지금 광주사람들은 「광주의 미래」를 생각한다.92년 대선과총선,그리고 자치단체장선거와 4.11총선등에서 몰표와 싹쓸이 결과를 두고 경제낙후와 인재 빈곤,문화와 정서의 경직성을 걱정한다.5.18때 보여주었던 광주시민의 공동체정신이 훼손돼가는 듯한 안타까움과,5.18의 에너지와 공동의 희망이 허무라고 하는 허공을 향해 빗나가고 있는 것같다는 소리가 있다.이와함께 광주가 역사속에서 축적해온 민주역량을 창조적 에너지로 승화시키고 허무와 패배, 정체로부터 벗어나 「내일의 희망」을 새롭게 조율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이제는 광주를 광주답게 하기 위해 시민 모두가 대승적 인식을 통해 「새로운 광주의 미래」를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광주는 분명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역사체험을 했다.
이로써 광주는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적 위상을 차지했다.그러나 정치지향성과 함께 정치적 오염을 가져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지금은 21세기를 눈앞에 둔 정보고속시대며 변화 그 자체가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이같은 변화의 시대에 걸맞게우리는 발전적 시민정신을 창출하지 않으면 안된다.프랑스 대혁명에 참가했던 프랑스인들이 새로운 민주질서를 실현시킨 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5월단체가 12개나 난립한 것도 그렇고, 해마다 똑같은 목소리로 분노와 슬픔의 몸부림만을 되풀이 해 민주역량을 소모시키는것은 퇴영적 사고의 산물이다.창조력이 없는 진보는 오히려 보수보다 더 반역사적일 때가 있다.진정한 승리는 현 실에서 보다 역사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광주는 총체적 경직성으로부터 보다 유연해지고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이제 우리에겐 균질적(均質的)세계인이 되기 위해 미래지향적 전환의 논리가 필요한 때다.
그렇다면 공의로운 미덕으로서 광주의 새로운 희망은 무엇인가.
그리고 광주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먼저 실력배양을 위해 문화적.정치적 역량을 결집해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리고 무엇이 지역발전을 위한 올바른 정치적 선택 인가를 심도있게 생각할 때다.그리하여 편가름 없이 서로 껴안고 따뜻하게 어울리는 민족공동체적 주체가 돼야 한다.따라서 정부도 광주항쟁의 진정한 자리매김을 위해 5.18의 전국화.세계화와 함께 국가기념일 지정과 망월동묘지의 국립묘지 승격을 서둘러야 한다.
광주항쟁 16주기를 맞은 지금,광주사람들은 푸른 5월처럼 이땅에 넉넉한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란다.『금남로는 사랑이었다/내가 노래와 평화에/눈을 뜬 봄날의 언덕이었다』고 노래한김준태의 시 「금남로 사랑」처럼.
文淳太 소설가.광주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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