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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미국 유해협상 타결이 뜻하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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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전 당시 실종된 미군유해 송환을 둘러싸고 뉴욕에서 진행된제2차 북.미협상 결과는 일단 북한의 「양보」라고 규정할 수 있다.유해 공동발굴조사단 구성을 요구하는 미국의 끈질긴 요구를결국 수용했기 때문이다.유해송환 문제는 전통적 으로 북한군부 소관이다.비록 협상대표로 외교부 소속의 김병홍(金炳弘)국제국장이 나왔지만 군부의 승인없이는 최종합의가 어려운 게 유해송환 문제다.북한군부가 공동발굴조사단 구성에 반대해 왔다는 것은 지난해 9월 방북했던 셀릭 해리슨 카 네기국제평화재단 연구원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당시 해리슨 연구원과의 인터뷰에서 북한군 고위장성은 『기술적으로 북.미간 전쟁상태가 종결되지 않은상황에서 공동발굴조사단 구성은 수용하기 어렵다』며 거부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 진다.그동안 북한이 북.미 평화협정 체결 전에는 공동발굴조사단 구성에 합의하기 어렵다면서 유해협상을정치협상화하려는 시도를 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이같은 태도를 바꿔 북한군부가 공동조사단 구성을 수용하는 「양보」를 한데는 한.미 양국의 「한반도 4자회담」 공동제의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평화협정 체결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4자회담을 개최하자는 「공」이 북한에 던져져 있는 상 황에서 더 이상 평화협정을 이유로 조사단 구성을 거부할 명분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또 북.미 관계개선에 대한 북한의 강한 기대감이 협상타결에 크게 기여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북한이 끝까지 우겨 결국 합의문에 삽입된 것으로 알려진 『금번 합의가 북.미관계 진전에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는 대목은 북한의 대미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그대로 반영한다.이번 유해협상에서 보인 북측의 태도는향후 미사일관련 후속협상,연락사무소개설 논의의 장애로 지적되었던 외교행랑의 판문점 통과등 북한군부가 간여하는 사안들에 대해북한이 유연성을 보일 가능성을 예 고하고 있다.
내달로 예정된 공동발굴조사단 구성과 활동문제 등을 둘러싼 논의에서 우여곡절이 예상되고,북한군부의 융통성 확보를 위해 미국이 지불할 대가도 만만치는 않겠지만 적어도 현시점에서 미 당국자들은 북한의 태도변화를 매우 반기는 눈치다.
한편 유해문제는 순수하게 인도주의 차원의 문제로 정치적 관계개선과는 상관없는 문제라는 게 한국정부의 공식입장이다.따라서 이번 협상타결이 경제제재 추가완화등으로 직접 이어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베트남의 경우를 들어 유해협상 타결을 수교로 가는 이정표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판단이라고 지적한다.테러지원국 지정이나 미사일 수출문제등 앞으로도 북.미간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유해문제는 타결된게 아니라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외무부 고위 당국자의 논평은 유해협상 타결을바라보는 한국정부의 불편한 심기를 말해주고 있다.
워싱턴=길정우특파원. 배명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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