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적 접근은 독도 해법 될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아카시 야스시(明石康·77·사진) 전 유엔 사무차장은 캄보디아와 유고분쟁을 비롯한 국제분쟁 당사자들을 중재한 분쟁 전문가다. 종교와 민족, 영토를 둘러싸고 갈등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 협상과 화해를 주선했던 그는 유엔 퇴직 뒤 현재 일본 분쟁예방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반평생 국제인으로 살아온 그는 한일 간 첨예하게 대립한 독도문제를 어떻게 볼까. 도쿄 롯퐁기에 있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국제사회에서 바라본 독도사태와 동북아·한일관계에 관한 의견을 들어봤다.

-독도에 관한 한·일 양국 국민 간 인식은 너무나 다르다.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가리자는 입장이고 한국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국제사법재판소가 1962년 영토분쟁에 관한 판결을 내린 사례가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가 국경지대의 힌두교 사원인 ‘프레아비히어’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 것이다. 당시 캄보디아는 태국 왕자 겸 외무장관이 프레아비히어에서 당시 프랑스 총독과 프랑스 국기를 배경으로 촬영한 사진을 자료로 제출했다. 캄보디아 정부는 태국 외무장관이 프랑스 국기를 배경으로 총독과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은 프랑스의 주권을 인정한 것이며, 이 주권은 캄보디아 독립과 함께 프랑스에서 캄보디아로 이양됐다고 주장했다. 재판은 캄보디아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재판장을 맡은 호주, 그리고 중국·일본 재판관은 다수의견과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세 재판관은 아시아의 예의와 가치, 문화적 관습을 들어 ‘당시 태국 외무장관이 프랑스 측의 다소 무례한 행동에도 주인의 입장에서 배려하고 참았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오히려 태국에 유리한 해석이었다. 두 나라는 프레아비히어를 놓고 지금도 다투고 있다. 결국, 법률적인 접근은 궁극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 민족과 정체성에 관한 문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일 양국의 독도문제도 법률을 넘어선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나 제 3의 기구에서 독도문제를 가릴 경우 경제적으로 또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이 높은 일본에 유리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여론이 있다.

“한·일 두 나라의 공통점은 자신을 너무 작게 보는 것이다. 한국은 저력 있는 나라이고 국제사회에서의 업적도 많다. 국가 위상은 영토 크기가 아니라 자신감이 중요하다. 과거 일본은 패전하면서 식민지로 갖고 있던 지역을 포함해 영토의 40%를 잃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일본은 몸이 가벼워졌기에 전후 경제·무역·투자, 그리고 과학기술 발달로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다. 국가의 크기와 풍요는 별개문제다. 실제로 아시아의 소국 싱가포르, 유럽의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가 세계에서 가장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 아닌가. 1+1=2가 아니라 3 또는 4가 되는 시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외교, 특히 한국·중국 등 아시아 주변국에 대한 외교정책을 평가해달라.

“후쿠다 총리가 관방장관 시절 만든 국제평화협력 간담회의 좌장을 맡은 적이 있다. 후쿠다 총리는 균형 잡히고 분명한 눈으로 일본과 세계 문제를 보고 진취적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에 그가 관방장관을 그만둔 것도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 대한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국도 그런 사정을 알고 있어 후쿠다 총리를 신뢰하고 있다고 본다. 후쿠다 총리는 한국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후쿠다 총리의 아시아 중시 외교를 믿었던 한국 정부나 국민은 이번 중학교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가 언급된 것에 대해 상당히 실망하고 있다.

“일본의 총리는 미국 대통령 같은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 일본 언론을 보면 잘 알겠지만 후쿠다 총리가 하고 싶은 일을 모두 하는 것은 아니다. 독도는 일본인들의 의식에서 별로 큰 지위를 차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 입장에서는 이번 해설서는 한·일 간 독도에 관한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넣음으로써 한국을 배려했다고도 볼 수 있다.”

-국제사회에서 40여 년간 활동하면서 세계에서 바라본 한·일 관계를 분석해달라.

“냉전 이후 이데올로기 문제를 둘러싼 국가간 분쟁은 급감했다. 90년대 이후에는 오히려 국내 민족문제와 문화·인종·종교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그런데 아시아, 특히 동북아시아에서는 여전히 국가끼리 대립하고 민족주의도 강해지고 있다. 21세기에 시대에 너무 뒤처지는 일이 아닌가 싶다.”

-동북아가 협력할 수 있는 국제적 장치는 무엇이 있나.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는 어떤 의미에서는 전세계에서 협력·연대가 가장 뒤처진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선 유럽연합(EU)이 만들어져 국가를 초월한 협력이 이뤄지고 있고,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연합(AU)이 있다. 아시아에서는 아세안과 남아시아지역협력연합(SAARC)이 있지만 아직 전체를 망라한 통합구도가 없다. 동북아에는 북한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6자회담이 있다. 현재 안전보장 분야의 논의를 하고 있는 6자회담을 앞으로 경제·사회·문화 분야로까지 역할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세계 속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한국은 일본보다 여러 핸디캡을 갖고 출발한 나라다. 일본의 식민지정책에서 고통받고, 독립한 뒤에도 또 한차례의 전쟁을 거쳐 지금까지 성장했다. 짧은 기간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뤘을 뿐 아니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국제사회에서 활약하는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외국에서 만난 한국 외교관과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모두 학식과 전문지식을 많이 갖춘 사람들이다. 특히 앞으로 나라를 이끌어갈 국제적인 인재 양성 측면에서는 한국에서 배울 점이 많다. 국제화 속에서 각국이 살아남기 위해 인재양성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됐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의 영어마을 등 교육현장에 대한 관심이 많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아카시 야스시=아키타현 출신으로 도쿄대와 동 대학원을 마친 뒤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미국 버지니아 대학원을 수료했다. 1957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유엔에 들어가 캄보디아 잠정통치기구 대표 등을 맡았다. 인도(人道)문제 담당 사무차장을 마지막으로 97년 퇴임했다. 그 뒤 히로시마평화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냈으며 현재 일본분쟁예방센터 회장을 맡아 민간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엔 젊은 인재양성에 발벗고 나서 2001년 군마(群馬)현에 아카시 주쿠(塾·학원)를 열었다. 매년 10명의 고등학생을 선발해 8개월 정도 주말을 이용해 대학교수 등 강사들을 초빙, 영어연수와 국제문제 관련 강의를 한다. 세계와 교류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하는 게 학원의 목표다. 저서로는 『유엔에서 본 세계-국제사회의 신질서를 찾아』 『사무라이와 영어』 등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