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철기자의여의도갤러리] 인덱스 vs 주식형 펀드 … 수익률 게임 승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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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2006년 5월 미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총. 워런 버핏 회장은 수많은 투자자 앞에서 자신의 투자철학을 새삼 강조했다.

“헤지펀드는 수수료만 비쌌지 실속이 없다. 시장수익률을 정직하게 좇아가는 인덱스펀드만 못하다. 두고 보라. 날고 긴다는 헤지펀드 10개 가져와도 S&P 인덱스펀드의 성과를 못 따라갈 거다.”

버핏의 말에 프로테제 파트너스의 데드 지데스 회장이 발끈했다. 프로테제는 헤지펀드계의 ‘신데렐라’였다. 2002년 설립 이후 해마다 빼어난 수익률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까지 기본 수수료 2%에 20%의 성공보수를 떼고도 95%에 이르는 누적 수익률을 기록했다. 인덱스 전문인 뱅가드사의 인덱스펀드 수익률(64%)을 크게 앞질렀다. 지데스 회장은 이듬해 7월 “그렇게 자신 있으면 우리하고 한판 붙자”며 버핏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프로테제가 운용하는 헤지펀드 10개와 버핏이 정한 인덱스펀드의 10년 수익률을 놓고 내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애송이 헤지펀드 회장의 도전에 6개월을 심사숙고한 버핏은 도전을 받아들였다. 양쪽이 50만 달러씩 내 총 100만 달러의 판돈도 걸었다. 이 대결은 국제 금융가에서 ‘세기의 대결’로 화제가 됐다. 올 1분기 현재 스코어는 프로테제 -1.9% 대 버핏의 인덱스 -9.5%. 하지만 10년짜리 내기이니 아직은 전초전이라고 하기에도 이르다. 버핏은 나중에 “이 게임에서 이길 확률은 60%뿐”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투자의 귀재라는 그가 망신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헤지펀드의 도전에 맞선 건 ‘사람이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버핏과 프로테제의 내기를 벤치마킹한 게임이 시작됐다. 유리자산운용이 이달 초부터 자사 인덱스펀드와 국내 대형 주식형 펀드 50개의 수익률을 10년간 비교해 공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유리는 소형사지만 가치주 펀드인 ‘스몰 뷰티’ 시리즈로 시장의 주목을 끈 운용사다. 버핏과 프로테제처럼 상대가 있는 게임이 아니어서 긴장감은 덜하다. 하지만 요즘처럼 시장이 좋지 않을 때 자산운용사가 수익률 비교 게임에 나선다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10년이나 그런 게임을 지켜볼 투자자가 몇이나 되겠느냐”는 비아냥도 들린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씩 펀드를 새로 찍어내고, 유행이 지나면 폐기해버리는 국내 펀드업계 풍토에서 유리의 실험은 신선한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당장은 큰 관심을 끌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기록을 쌓아간다면, 10년 후엔 정말 의미 있는 기록이 되지 않을까.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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