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10대>4.오빠부대의 극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지난달 28일 오후4시.서울강서구등촌동 서울방송 공개홀 앞은1천여명의 여학생들로 인도는 물론 차도까지 가득 메워졌다.
오후5시부터 시작되는 『생방송 TV가요 20』을 방청하러 온이들은 「×××는 내 꺼」「××여 영원하라」등의 플래카드를 저마다 들고 우상(?)들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오전9시에 왔는데 못 들어갈 것 같아요.친구들에게 소문 다냈는데….부끄러워 학교에도 가기 싫어요.』 『그룹 「솔리드」를사랑한다』는 朴모(14.서울J여중2.서울양천구목동)양은 입장이불가능해지자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내 울기 시작했다.
친구 3명과 함께 줄은 선 徐모(15.서울K여중3.서울서대문구창천동)양이 공개홀에 도착한 것은 전날 오후9시.
『오빠(가수)들을 직접 봤다는 것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죠.
』 밤을 꼬박 샌 徐양의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지만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가수들이 나타날 때마다 거의 까무러치는가 하면 대성통곡하기도 합니다.자칫 사고라도 날까봐 걱정이지만 질서를 잡을 수 없어요.』 경비원 李모(50)씨는 『요즘 아이들이 왜이리 극성인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인기연예인이 등장하는 공개녹화장.콘서트장을 비롯해 농구장.배구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오빠부대.이들의 대부분은 여중.여고생들이지만 최근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연령층이 내려가고 있다.
서울 강남의 D초등학교 5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교사 朴모(35.여)씨는 『80%이상이 인기인들의 사진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의견차로 싸움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E여중 3학년 丁모(15)양은 방과후면 으레 친구 3~4명과 함께 연세대 체육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우지원 선수의 팬이었던 丁양은 『오빠가 졸업한뒤 한동안 너무허전해 견디기 힘들었어요.오빠가 연습하던 체육관만 봐도 눈물이나요』라고 말했다.
연세대.고려대의 체육관.기숙사는 물론 선수들이 다니는 대중목욕탕까지도 오빠부대의 추격(?)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1월에는 한 젊은 가수의 죽음을 슬퍼하던 인천N여중 宋모(15)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주었다.
같은달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소동 당시 여중3학년인 딸이3일간 무단 외박했다는 金모(46.회사원.서울양천구목동)씨는 『내 딸이 그럴 줄은 몰랐다』며 『외박이후 집안에 있던 TV를모두 없애버렸지만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닌 것같 다』고 말했다.
문화평론가 김창남(金昌南)씨는 『오빠부대의 존재를 긍정적으로바라봐야 한다』면서도 『문제는 상업적 매스미디어가 청소년들의 창조적 상상력의 출구를 막아버리고 획일적 문화에만 빠져들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교육학과 이성호(李星鎬)교수는 또 『이들을 나무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가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준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