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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2만달러 시대' 토대 닦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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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4.15 총선이 열린우리당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이 승리에 도취되지 말고 자중.자애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번 승리가 자력에 의한 승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주의 바람과 탄핵역풍이 없었다면 과반수 의석 획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러한 바람이 없었다면 정책선거가 실종되지 않았을 테고, 그렇게 됐다면 지난 1년의 국정운영 실패가 분명히 표로 심판되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비록 과반수 의석은 확보했지만 비례대표 정당득표율은 38.3%에 그친 의미를 깊이 되새겨야 한다. 여하튼 이러한 바람은 소위 수구부패 정당 한나라당과 또 다른 소위 수구지역주의 정당 새천년민주당이 만들어 주었고, 검증되진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참신한 열린우리당은 그 바람을 타고 승리했다.

*** '임기중 年 6% 성장' 물건너 가

그러나 바람으로 흥한 자는 바람으로 망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노인폄하 역풍에서 보듯 여론이란 시도 때도 없이 변하게 마련으로 한순간의 오만과 실수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참여정부의 국정실패는 이제부터 철저히 그들만의 책임으로 돌아갈 것이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은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이 순간에도 중국을 포함한 우리의 경쟁 상대국들은 약진하고 있고 올해 평균 7% 이상의 경제성장이 예상되는 아시아권에서 우리만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서 일자리는 줄어들고 청년실업자와 신용불량자는 늘고 있으며 중소기업은 망해가고 있다.

최근 여당의 총선 승리 후 여러 연구기관들이 올 1분기 동안 낮춰잡았던 경제성장률을 다시 5%대로 상향 조정하고 있지만 이것은 3.1%로 추락한 지난해 성장률을 만회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이 상태로 가면 참여정부가 약속한 임기 중 연 6%의 경제성장률 달성은 물건너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정신적 여당이 아닌 실질적 여당으로서 열린우리당은 지금부터 이 나라와 국민의 명운을 책임지는 책임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는 무엇보다 먼저 승자로서의 포용력을 보여야 한다. 과반수 의석을 무기로 무리한 기획사정을 하거나 지나치게 진보적인 개혁을 밀어붙인다면 또 다시 국론분열과 정국불안이 재연될 것이다.

당분간 갈등과 반목을 접어두고 상생과 협력을 바탕으로 경제 살리기에 전념해 일자리를 만들고 서민생활을 안정시킨다면 자연스럽게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얻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기록적인 수출신장이 설비투자와 소비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기업이 투자하게 하기 위해선 규제 완화, 기업투명성 제고를 포함한 정책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기적으론 대선자금 수사와 기업인에 대한 처벌이 하루 빨리 적절한 수준에서 마무리되는 게 중요하다. 대통령을 포함해 여야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불행한 과거를 하루 빨리 정리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립하는 데 힘을 쏟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 기업인 수사 빨리 마무리해야

이러한 단기적인 경제 살리기보다 더욱 중요한 과제는 참여정부가 앞으로 남은 임기 4년 동안 우리나라가 소득 2만달러 국가로 진입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소외 계층과 비주류 계층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정책들이 자칫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만약 절대다수 의석을 무기로 참여정부가 하향 평준화를 초래하는 진보적 입법들을 4년 동안 마구잡이로 도입한다면 그것은 국가경쟁력을 돌이킬 수 없이 퇴보시키게 되고 이것은 역사에 두고두고 죄를 짓는 것이다. 부디 임기 동안 모든 기존 질서를 바꾸어 놓겠다는 조급증을 버리고 이 나라 경제를 선진국으로의 성장궤도에 반듯하게 올려놓는 데 진력하기 바란다. 그것이 또한 비주류 소외계층의 삶을 향상시키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나성린 한양대 교수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