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해임 논란 부른 ‘임명권’ 조항 당시 법 만들 때 국회서 논의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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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정연주 전 KBS 사장을 해임하자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대통령이 임명권만 있을 뿐 해임권이 없는데도 사장을 면직한 것은 법률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대통령의 KBS 사장 해임권을 없앴다는 이들의 주장과 달리 국회에서 통합방송법이 제정될 당시 이 문제는 공론화되지 않았던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1999년 통합방송법 제정 당시의 국회 기록을 분석한 결과다. 검토 문건은 법안 제안 이유서와 전문위원 검토보고서, 법안심사소위원회 보고서, 문화관광위원회 회의록 등이다. 당시 방송법안은 새정치국민회의 신기남 의원이 의원 157명의 동의를 받아 대표발의했다.

옛 한국방송공사법은 “사장은 이사회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면한다”고 규정했다. 그런데 통합방송법에선 ‘임면’이란 단어가 ‘임명’으로 바뀌었다. 정연주 전 KBS 사장과 민주당, 일부 언론단체들은 “사장의 임기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용어를 바꾼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신기남 전 의원도 이날 “여야 합의로 해임권(면직권)을 없앤 건 정치권력의 방송 장악을 막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 기록을 확인한 결과 어디에서도 이런 ‘중대한 고려’가 있었다는 주장을 입증할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KBS의 경우 사장 제청권을 방송위원회와 KBS 이사회 중 누가 가지느냐 하는 부분 등이 언급됐을 뿐이다. 문광위 수석전문위원이 99년 7월 작성한 ‘방송법안 검토보고서’ 는 새 방송법이 통과될 경우 KBS와 관련해 달라지는 부분으로 여섯 가지를 열거했는데 임면·임명 부분은 적시되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 법에서도 ‘임명’으로 돼 있었다고 기재하는 오류까지 범했다. 한나라당의 심재철 의원은 “전문위원조차 착각할 정도로 의미 부여가 되지 않았다는 증거”라며 “당시 임명과 임면이란 용어가 혼용됐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국회에 앞서 방송법의 모체가 된 방송개혁위원회 보고서에서도 해임권 이슈는 포함돼 있지 않았다.

법 제정 작업에 참여했던 방송통신위원회 간부는 “KBS 내부에서만 일부 얘기가 있었을 뿐 해임권 부분은 공론화되지 않았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당시 한나라당 문광위원으로 활동했던 박종웅 전 의원도 “대통령의 해임 권한을 삭제하는 문제는 공식 논의된 적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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