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를 칼로 찔러 살인훈련 64년 전 감각 아직도 손에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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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나는 중국인 포로를 총검으로 찔러 죽이던 64년 전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으로 징집돼 중국에서 복무를 했던 일본 와세다(早稻田)대의 한 명예교수(83)가 13일 아사히(朝日) 신문에 중국인 포로를 대상으로 ‘살인 훈련’을 했던 당시 상황을 용기 있게 고백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는 “죽기 전에 반드시 진실을 전달해야겠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19세이던 1944년 11월 일본을 떠나 다음 달 중국 산시(山西)성에 도착했다. 그를 평생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한 살인 훈련은 이듬해 1월 실시됐다. 평소와 다른 훈련 장소로 이동하자 통나무가 두 개 세워져 있었고 잠시 후 다른 일본군 병사들이 뒤로 손이 묶인 중국인 포로 두 명을 끌고 왔다. 한 명은 중년이었고 다른 한 명은 20대였다. 일본 병사들은 두 사람의 상의를 벗긴 뒤 통나무에 묶었다. 20대 중국인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시토(刺突·살인) 훈련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군의 살인 훈련은 신병들을 상대로 담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곳곳에서 자행됐다. 신병들은 두 개 조로 나뉘었다. 중대장의 ‘돌격’ 명령에 따라 전방에 있는 ‘적’에게 달려가 총검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찔러야 했다. 그가 속한 조는 20대 청년이 대상이었다. 그는 10여 번째 순서였다. 그에게 돌격 명령이 내려지기 전에 이미 그 청년은 총검에 난자당해 주저앉은 채 늘어져 있는 상태였다.

돌격 명령에 따라 달려갔지만 그는 멈칫했다. 가슴에 수십 군데 칼자국이 나 있었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찔러”라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총검을 휘둘렀다. 그는 “내 손에는 아직도 당시 감각이 남아 있다”고 고백했다. 일본이 패망한 뒤 그는 여러 차례 꿈을 꿨다. 자신이 적이 돼 총검에 찔리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는 당시 상황 등을 포함한 전쟁 중 체험을 에세이 형식으로 정리하고 있다. 살인 훈련도 생생하게 포함돼 있으나 아직 원고를 정리 중이다. 그는 “제자들의 손에 의해 유고집으로 발표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인도적인 죄를 범했다” 고 강조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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