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자 블로그] 한국이 일본을 제쳤다. 문제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 혼다가 일본 혼다를 제쳤습니다. 무슨 일이냐구요?

지난달 수입차 판매에서 혼다코리아의 어코드3.5가 무려 818대나 팔렸습니다. 여기에 2.4(285대) 모델을 합치면 수입차 처음으로 단일 차종 월간판매 1000대를 넘어섰지요. 이런 수치를 일본 판매량과 비교하면 재미있는 결과가 나옵니다.

일본서 어코드3.5는 ‘인스파이어’라는 이름으로 팔립니다. 가격은 약 320만엔(약 3100만원) 정도 합니다. 이 차는 일본서 인기가 없습니다. 배기량이 너무 큰 데가 연비도 좋지 않기 때문이죠. 중형차 시장에선 현대차의 그랜저(TG)라고 말할 수 있는 도요타 크라운이 버티고 있어 인스파이어는 명함도 못 내밉니다. 인스파이어의 일본 내수 판매 목표(연간)가 8000대에 불과한 실정이죠. 이것도 엄청 크게 잡은 수치입니다.

어코드는 수입차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국산 중대형차 시장을 그대로 잠식합니다. 주로 그랜저와 SM7 시장이 타격을 봅니다. 어코드는 6월에는 체어맨 판매를 제쳤고 지난달 르노삼성의 SM7(2.3,3.5 포함)의 판매대수(1217대)와 맞먹습니다.

지난달 웃지 못할 일이 생겼습니다. 일본 자동차 시장의 30%에 불과한 한국에서, 그것도 수입차인 어코드3.5가 일본 인스파이어보다 더 많이 팔렸습니다. 혼다 본사에서는 즐거운 일이지만 한국 소비자의 구매 형태를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합니다. 한국 소비자들이 대형 배기량에 이런저런 옵션이 많이 달린 차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어코드3.5가 800대가 넘게 팔릴 줄은 몰랐다는 겁니다. 일본에서 한국 수입차 시장을 분석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답니다. ‘한국은 사회적 지위를 판단할 때 큰 차를 타는 사람이 대접받는다’라는 것이죠. 자동차와 사회적 지위, 적어도 일본에선 비례 관계로 보기 어렵습니다.

<자동차 구입은 연봉의 20% 이내에서>

어코드3.5를 구입하는 고객 가운데는 2900만원대 준중형 시빅을 보러 왔다가 어코드로 옮겨 탄 경우가 상당수라고 합니다. 시빅에서 500만원만 더 쓰면 2400㏄ 어코드 중형차로 옮겨 탈수 있고 또 여기서 500만원 더 쓰면 어코드3.5로 한 껏 폼을 낼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한다는 것이죠. 문제는 신용불량으로 계약을 해놓고 할부가 안돼 계약이 취소되는 경우도 꽤 있다는 것이죠. 통상 자동차 구입은 할부를 감안해 연봉의 20% 이내에서 지출하는 게 정설입니다. 5000만원 연봉이라면 연간 1000만원 이내에서 자동차 관련 비용을 지출하는 게 가계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어코드3.5를 그랜저3.3과 비교해보면 가격은 어코드가 300만원 정도 비싸지만 각종 옵션에선 그랜저가 더 좋습니다. 그럼 왜 어코드가 인기일까요. 바로 수입차라는 점이죠. 또 덩치를 크게 보이게 한 디자인이 먹힌다고 합니다.

수입차 판매는 신기록을 이어갑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차 신규등록 대수는 역대 최고치(6462대)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전년 동월 대비 48.2% 증가한 것으로 이전 월간 최다 기록(올해 4월 6153대)를 넘어선 겁니다. 1∼7월까지 누적 대수도 3만9911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7% 늘었지요. 모든 산업에서 소비가 주는 경기침체가 완연한데 유독 수입차만 씽씽 달리고 있는 셈이죠. 여기엔 국산차와 가격차가 10%까지 좁혀진 일본차의 강세가 가장 큰 이유입니다.

참고로 브랜드별 판매대수는 혼다 1665대 BMW 734대 폴크스바겐 716대 벤츠 656대 아우디 533대 순이었습니다. 폴크스바겐은 지난달 발표한 신차 티구안(203대) 효과로 처음으로 3위로 발돋움했지요.

폴크스바겐에선 한국이 효자 중의 효자지요. 독일 이외에 세계 시장에서 대형차 페이톤이 잘 팔리는 나라는 한국뿐 이라고 보면 될 정도지요.

<현대차, 상반기 일본서 300대도 못팔아>

상반기 일본 수입차시장은 전년 대비 20% 이상 감소했습니다. 조금만 경제 위기설이 나와도 움츠러드는 일본 소비자의 전형적인 행태라고 할까요. 현대차는 상반기 일본서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실적을 냈습니다. 300대도 못 팔았습니다. 한 달이 아니라 6개월 동안 수치입니다. 1억이 넘는 페라리가 1000대 이상을 파는 것에 비하면 참혹하다고 할 수 있지요.
일본에서 현대차는 이제 존재감마저 사라진 상태입니다. 도쿄 레인보우 브리지 옆에 서있던 대형 입간판도 철거했습니다. 일본 철수설이 나오는 이유가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수입차 호조 이유는>

수입차가 호조인 것은 국산차와 경쟁하는 3000만원대 차량이 잘 팔려서이지요.
판매가가 3000만 원대인 혼다 어코드와 CR-V는 고객의 80% 이상이 국산차에서 수입차로 바꾼 경우라고 합니다. 보통 7,8년 구입한 EF쏘나타를 타던 고객들이 어코드를 타보고 홀딱 반했다는 겁니다. 요즘 XG나 SM7만 타봐도 일본 수입차에 절대 뒤지지 않지요.

문제는 점점 가격이 올라가는 국산차의 가격정책입니다.
어코드는 현대차 그랜저 2.7과 3.3 모델과 가격차가 200만∼300만원 정도 비쌀 뿐입니다. CR-V 역시 싼타페와 가격차가 200만원 밖에 나지 않지요. 국산차 가격은 해마다 오른 데 비해 혼다는 국산차에 타깃을 맞춘 공격적인 가격 책정으로 국내 진출 4년 만에 부동의 수입차 시장 1위로 올라섰습니다. 앞으로 관심은 혼다의 1위 수성입니다. 10월에는 미쓰비시가, 11월에는 닛산이 들어옵니다. 내년 상반기 자동차 업계의 최강자 도요타가 판을 벌입니다. 모두 3000만원대 차량이 주력인 회사입니다. 이때 혼다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겠지요.

수치로 봐도 재밌습니다. 3000만원대 수입차는 지난달 2091대로 전체 판매의 32.4%를 점유했습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70% 이상 급증했지요. 5000만원 이하는 전체의 58%에 달했습니다.

국산차는 지난달 10만6710대를 팔아 전년 동월 대비 8% 증가했습니다. 속을 들여다보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경차(기아차 모닝) 판매가 급증해 전체 대수는 올라갔지만 2400㏄ 이상 중대형차는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죠. 현대차의 고급차인 제네시스는 월 4000대 이상을 팔다가 5월부터는 2000대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어코드가 약진만 하지 않았어도 3000대 판매는 문제가 없었다고 봅니다.

혼다는 2010년께 한국에서 월 2000대 이상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일본차 강세가 지속될 경우 내년에는 수입차 월 판매 대수 1만대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합니다. 국내 승용차 시장의 10%를 수입차가 점유하는 것이죠.

현대차는 일본차로 눈을 돌리는 소비자를 잡기 위해 그다지 노력을 하지 않는듯 합니다. ”그거 조금 내줘봐야 아직도 시장의 50%를 점유하는 데...” 물론 경영진의 걱정은 대단하지만 내수보다는 수출 위주의 전략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안방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라는 도요타 영업본부의 철칙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김태진 기자

▶ 블로그 페이지에서 바로 보기

[J-Hot]

▶ 연장 또 연장 끝에 혈투…김재범 빛나는 銀

▶ MB "시위자도 美쇠고기 먹지 않을까 싶다"

▶ 또 속았다! 개막식 女어린이 노래도 '짝퉁'

▶ "여기에선 한국말 하면 상류층입니다"

▶ 심권호 막말 해설 논란…뭐라 했기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