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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산마을>14.정선군 호촌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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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羅천봉(75)할머니는 올들어 삼베 세필을 짰다.
이젠 몸도 성치 않고 눈이 침침해 이틀에 한필씩 짜던 한창때에 비하면 형편없이 떨어지는 양이다.하지만 남편과 함께 용돈으로 쓰기엔 괜찮은 편이다.삼베 한필이면 32만~34만원을 받기때문이다.외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이 용돈을 보내 주지만 시원치않다.평생 삼베를 짜다보니 베틀을 만지는 것이 좋기만 하다.羅할머니가 다루는 베틀은 5대째 내려온 집안의 가보다.할머니 집안은 이 베틀로 생활하고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羅할머니가 17세때 시집와 여태 살고 있는 호촌리(虎村里.강원도정선군동면)는 「삼베」와 「대마(大麻)재배」로 유명한 산마을이다. 호촌은 호명(虎鳴)과 풍촌(豊村)이라는 두 마을 이름이 합쳐져 만들어졌다.「호랑이 울음이 날 정도의 산골이지만 잘사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호촌리가 잘사는 것은 전적으로 삼베와 대마 덕분이다.
羅할머니는 『호촌리에 처음 들어설때 베짜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당시엔 호촌리 70여가구에 베틀이 하나씩은 다 있었고 여성들 사이엔 보이지 않게 경쟁이 있었다.『누가 잘 짜더라』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았고 서로 지지 않으 려고 밤을 꼬박 새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옛말이다.호촌리에서 삼베를 짜는 것은 羅할머니를비롯해 몇몇 할머니 뿐이다.힘든 베짜기를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그래서 요즘은 대마만을 재배해 삼척.울진 등지에서 오는마상(麻商)에게 넘기기만 한다.
대마는 삼베의 원료다.대마의 껍질(피삼)을 가늘게 쪼개 가공하면 까칠까칠하고 빳빳한 촉감이 일품인 고급옷감 삼베가 된다.
호촌리는 현재 정선군에서 대마를 가장 많이 재배하는 마을이다.
지난해 1만5천평에 대마를 재배했다.또 질도 뛰어 나다.근처 몰운리에서도 대마 재배를 해봤지만 재미를 보지 못했다.대마밭 3백평에선 30필정도의 삼베를 짤 수 있는 피삼이 나온다.피삼1필분량에 9만원에 거래된다.대단한 고소득 작물인 셈이다.
그러나 대마 재배는 고소득 작물 턱을 하느라 그런지 잔손질이많이 간다.대마는 4월에 씨를 뿌려 7월말에서 8월까지 수확한다.밭을 갈때 소를 이용해도 안된다.순전히 사람 힘으로 밭을 갈아야 한다.밭고랑이 깊게 패면 안되기 때문이다 .또 키가 보통 3까지 자라는데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넘어지기 십상이다.
또 대마초를 피우는 사람들의 공격도 막아야 한다.대마잎은 환각제로 쓰이는 대마초의 재료다.대마초 흡연자들이 밤중에 와 대마잎을 모조리 따가면서 대마밭을 쑥밭으로 만드는 일이 허다했다.지난해 여름철만 해도 경찰이 잠복근무해 서너명을 잡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마 재배를 움츠러들게 하는 것은 정부의 지나친 규제다.
『정부가 대마관리법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합니다.지난해엔 씨를지정된 장소에 뿌리지 않았다고 해서 몇몇 사람이 고생을 했어요.우리야 대를 이어 대마 재배만 해왔는데 무슨 다른 욕심이 있겠어요.』 호촌리 이장 羅병남(39)씨의 볼멘 얘기 다.
글=하지윤.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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