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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로 나눈 20년 師弟의 정-선희학교 교사 김병일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19일 오전 서울성동구금호동 금강제화 생산공장.
시끄러운 기계음 속에서 작업에 열중하던 20여명의 청각장애근로자들이 갑자기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작업장입구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어댔다.
이들이 아버지처럼 따르는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인 선희학교 김병일(金炳一.63)교사가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리며 작업장에 들어선 것이다.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리는 것은 『너희들 정말 잘하고 있구나.
최고다』라는 뜻의 수화.
근로자들은 金씨의 손을 부여잡고 수화로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연신 즐거운 표정이었다.
금강제화에 근무하는 金교사의 제자는 모두 26명.
이들은 평균근속연수가 15년에 이를 정도로 일반인보다 훨씬 더 잘 적응된 생활을 하고있다.金교사의 노력에 힘입은 결과다.
金교사는 제자들이 제대로 직장에 적응하는지를 살피기위해 20여년동안 2개월에 한번꼴로 공장을 찾아 제자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격려의 말을 아끼지않았다.
金교사가 이들 청각장애인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2년.
56년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뒤 고향인 전북군산에 내려가 농사를 짓던 金교사는 당시 1만여평의 땅을 소유한 부농으로 지방의회의원도 지내는등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러나 당시 5세이던 큰아들 재천(載天.31)씨가 뇌막염을 앓아 청각을 상실하면서 金교사에게 전혀 생각지 않았던 인연이 다가왔다.
金교사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중 장애인들을 위해 아무 조건없이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金교사는 군산교대 교사양성소 6개월과정에 들어가 초등 교사 자격증을 땄다.
金교사는 72년 아들을 서울의 선희학교에 입학시키면서 자신도초등부교사로 선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외길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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