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장다사로 “황당한 사기일 뿐” 한목소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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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 03면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 언니 김옥희씨가 1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수의로 갈아입고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고 있다. 뉴시스

김씨가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며 30억원을 받은 혐의로 체포된 것은 지난달 31일. 당시 청와대는 “6월 초 민정 라인에서 김씨 관련 비리 첩보를 입수한 뒤 사실 조사에 나서 7월 14일 대검에 사건을 이첩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 내사를 맡았던 것은 민정수석 비서관실의 ‘친인척 전담 관리팀’이었다.

‘언니 게이트’ 김옥희 40일 조사한 청와대, 민정팀에선 무슨일이

이종찬

이종찬 전 수석 “철저히 조사”
청와대 내사의 내막을 알기 위해 이종찬(사진) 당시 민정수석과 접촉을 시도했다. 이 전 수석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임명된 뒤 6월 하순 청와대 비서진 개편으로 물러났다. 그와 나눈 일문일답.

-최초 인지 시점이 5월이란 얘기가 있던데.
“구체적인 조사 경위는 현재의 당국자들에게 물어보라. 내가 철저히 (챙기라고) 얘기하고 나왔으니까….”

장다사로

-촛불 시위로 어수선한 시점에서 이첩 시기를 늦춘 것이란 시각도 있다.
“끌어안고 있던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의 기본 방침은 절차를 다 밟아서 수사기관에 오픈한다는 것이었고, (조사를) 끌고 그런 건 전혀 없었다. 정상적으로 처리했다.”

-야당에서 내사 과정을 의혹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정치적으로 다루자는 의도는 1%도 없는 사건이다. 트집을 잡으려면 한도 끝도 없다.”

그에게 사건의 성격을 물었다.
“이건 뭐 확실한 사기 사건이다,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냈다. 김씨 자체가 무슨 정치적인 인물이 되나. 말을 지어내가지고 나라를 혼란스럽게 할 일이 아니다. BBK 사건에서 봤듯이 돈 흐름을 확인하면 알 것 아닌가.”

-그래도 김종원(서울시버스운송조합 이사장)씨가 뭔가를 믿고 30억원이나 되는 돈을 줬을 텐데.
“세상 살다 보면 영리한 사람도 사기를 당한다. 보이스 피싱 사기 당하는 게 하루에 몇 건이라고 하더라? 합리적으로 보면 그걸 어째서 당하느냐고 생각하지 않나. 사람 일이라는 게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친인척 관리를 철저하게 했으면 이런 일이 없을 것이란 정치권의 비판에 대해선.
“타이트하게 했기 때문에 이런 것도 알아낸 것 아닌가. 대통령 친인척을 사전에 다 따라다니란 말인가. 당사자들 반발도 있고, 그 사람들 이해시켜가면서 조심시키고 감시하는 게 얼마나 어렵겠나. ”

마지막으로 김씨 사건과 관련해 김윤옥 여사에게 물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 전 수석은 “디테일한 것은 말할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장다사로 비서관 “정교한 사기”
다음 취재 대상으로 삼은 이는 장다사로(사진) 민정1비서관. 한나라당 당료 출신인 그는 1기 민정팀의 바통을 이어받아 조사를 마무리하고,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장 비서관도 “축소나 은폐는 전혀 없었다.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정정당당하게 검찰로 넘긴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조사 기간을 놓고 논란이 있는데.
“사실 확인하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 청와대 내사라는 게 직접 사람 불러서 하는 게 아니다. 여러 가지 간접적인 방법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또 사실관계가 확인된 상태에서 전임자로부터 사건 인계를 받긴 했지만, 이젠 내 책임이기 때문에 궁금한 것들을 다시 확인시켰다.”

-김종원 이사장이 허무하게 당한 것인지.
“원래 사기라는 게 황당하게 발생한다.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다. 나중에 결과 나오는 것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김씨가 아주 정교하게 김 이사장을 속였다.”

-김씨의 청와대 출입기록은 없다던데, 통화기록은 있나.
“없을 수 있겠나. 통화기록이 일부 있었다. 대개 권력 사기 사건이 그렇듯 피해자를 속이기 위해 피해자 앞에서 청와대에 전화를 한다, 그런 시도가 있었다.”

-김 여사와 통화를 했는지.
“부속실 등의 통화내역을 살펴봤지만 영부인과 접촉한 흔적은 전혀 없다.”

김씨, 실세 2명과 접촉설
청와대 전·현직 민정라인 모두 ‘단순 사기 사건’이라는 지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시각이 만만치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청와대에서 사정업무를 맡았던 관계자는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 관련 기관을 동원했을 경우 어렵지 않게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친인척 팀에서 시간을 꽤 끌다가 검찰에 넘긴 것은 사실이에요. 물론 법적인 절차를 다 밟다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만드느라 주물럭거렸을 수도 있습니다.”

김씨의 청와대 방문 기록이 없다는 해명에 대해서도 “기록에 남기지 않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특정인의 방문 사실은 청와대 면회실 전산시스템에 기록이 있는지 여부로 확인합니다. 누군가를 개인적으로 만날 때는 부속실에서 별도로 차를 내려 보내기도 해요. 이러면 기록이 남지 않지요. 대통령 의지가 강하지 않으면 친인척 비리는 막기 힘듭니다.”

김씨를 둘러싼 의혹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나라당 인사는 “김씨가 당 내에서 마당발로 알려진 한 인사를 통해 공천을 좌지우지하는 실세 2명에게 김 이사장의 공천을 부탁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당 주변에서 ‘김 여사 언니에게 30억~40억원을 주면 금배지를 달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김옥희씨 본인은 아니었지만, 김 여사 언니를 팔고 다니는 사람을 적발해 자체 조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런 잡음 때문에 아무리 실세라고 해도 김씨 부탁을 받고 김 이사장을 공천할 상황이 안 됐다는 얘기다.

또 김씨가 ‘대통령 부인의 사촌언니’라는 점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을 하고 다녔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김씨는 지난 3월 대한노인회 중앙회의 초청을 받아 노인회 현황을 단독 브리핑 받기도 했다. 노인회 관계자는 “당시 김씨는 김 여사에 대해 ‘어렸을 때 집안이 어려워 우리 집에 데려가 키웠을 정도로 아끼는 동생’이라고 과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공천 직전인 2월 29일에는 김 이사장을 노인회 자문위원으로 선임하고 위촉장을 전달했다”며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추천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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