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베트남 출신 프랑스 감독 트란 안 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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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베트남출신의 프랑스감독 트란 안 훙(34)은 영화를 만들 때『색깔을 끄집어내는 과정을 무척 좋아한다』고 말한다.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빛과 색채의 혼합이 빚어내는 신비로운 영상의 언어로 가득차 있다.그 언어는 때로는 고즈넉하고 따 스한가 하면 때로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원색적이고 강렬하다.
자신의 두번째 장편영화 『시클로』(Cyclo)의 개봉(20일)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트란감독은 작품을 설명하면서 회화와 색채 이야기를 많이 했다.『시클로』에서 원색의 강렬한 이미지를자유자재로 구사하며 호치민시의 혼란스러움을 관객 에게 전달하는그는 자신의 미학,또는 색채감각의 근원을 「어머니의 요리」에서찾는다. 『어머니는 요리하기를 무척 좋아했고,맛 뿐만 아니라 음식을 아름답게 장식하는데도 각별한 신경을 쏟았다.죽 한 그릇에도 초록색 풀과 붉은 빛의 새우 등이 예쁘게 얹어졌다.음식의바탕색과 대비되는 강렬한 색채를 보고 자라면서 미학적인 맛을 터득한 것같다.』 재단사부부의 2남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며 첫장편 『그린 파파야 향기』를 만들었다.
93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과 프랑스신인감독상.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휩쓴 이 작품은 그래서 그에게 있어서는 회고적이며 상상속 의 베트남을 담은 것이다.
반면 『시클로』는 91년 베트남을 방문했을 때 받은 「충격과새로운 발견」을 그리고자 한 작품이다.호치민시 거리를 누비는 자전거택시를 모는 주인공 소년을 통해 빈곤과 혼란의 베트남을 드러낸 『시클로』는 지난해 베니스영화제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린 파파야 향기』와 『시클로』는 모두 베트남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두 작품에서 드러나는 베트남의 이미지는 전혀 다르다. 네살때 가족이 라오스로 이주했고 13세에 프랑스로 이민온 트란감독은 베트남을 무대로 삼지만 영화적인 정서와 감성은유럽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그는 『베트남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으며 베트남이란 국가는 나에게 그저 또다른 하나의 나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클로』도 베트남의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자신은 베트남이 주제라기보다는 가난과 돈앞에서 혼란을 느끼는 보편적인 주인공들을 통해 「순수의 상실문제」를 다루고자 했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영화에서 페인트와 금붕어가 바로 순수-타락-다시 정화의 의미를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체계라고 설명했다.
『나는 베트남의 역사나 인류의 역사같은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이야기』라는 말에서 매우 「프랑스적인」 젊은이임을 느끼게 하는 그는 베트남보다는 동양에 집착한다고 설명한다.
금발에 파란 눈등 색채가 많은 서양인의 얼굴에서는 아름다움을전혀 느끼지 못하는 반면 단색톤의 동양인 얼굴이 오히려 다양한색채를 끄집어낼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계산된 행동,절제와 통제의 미학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는 그는 일본영화,특히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을 좋아한다.
독서광인 그는 프랑스어로 번역된 이문열의 소설을 다 읽었으며한국영화도 20여편 보았다.
미소년같은 외모에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철학도답게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트란감독은 자신의 모든 영화의 주연을 맡는 아내 트란 누안케와 오는 10월 첫아이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다음작품으로는 신약성서를 토대로 한 경찰이야기를 구 상하고 있다.
새로운 동양적인 누아르영화의 창조를 위해 현재 시나리오작업중이며 홍콩에서 로케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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