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서 주차 봉사, 굉장하다" 도야코(G8 정상회의)서 귀엣말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엄청난 반미 시위로 치달을 뻔 했던 미 지명위원회의 독도 영유권 표기 문제가 부시 대통령의 지시로 '한국령'으로 원상회복했다.이례적인 일이다. 독도 대반전의 의외성을 설명하는 고리로 부시 미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기독교적 코드를 꼽는 시각도 있다.

지난 달 9일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주요8개국(G8) 확대 정상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보면 그럴 법해 보인다. 독도 대반전의 배경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공도 있다.

다음은 중앙선데이 기사 전문.

미국 지명위원회(BGN)의 독도 영유권 표기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원상회복된 것은 한·미 외교사에 기록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다.'독도 대반전'이라할 만하다.

서울과 워싱턴 외교가의 핵심 인사들은 부시가 방한(5~6일)을 앞두고 한국에 준 선물,미 국무부내 한국 라인의 적극 개입,한국측의 사활을 건 '몰입외교'가 함께 작동한 결과로 보면서도 “부시와 이명박 대통령의 내면을 연결하는 인간적인 취향과 코드를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양 정상의 깊은 신뢰와 우정이 밑바탕이 됐다”고 평가했다. 4월 캠프 데이비드 회담과 지난 달 도야코 주요 8개국(G8) 회담에서 두차례 만났던 두 사람은 무엇으로, 어떻게 통(通)했던 것일까.정부 고위 소식통은 2일 “부시 대통령이 독도 영유권 표기를 원상회복시킨 것은 미국의 또 다른 동맹국인 일본과 충돌을 무릅쓰고 취한 외교적인 의외의 조치”라면서 “의외성을 설명하는 고리는 부시 대통령이 도야코 회담에서 이 대통령에게 보여준 친밀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7월 9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주요 8개국과 이 회의에 초대된 7개국(한국 중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호주 인도네시아) 정상들이 회담장인 윈저호텔 1층 잔디밭에 모여 환담을 나누던 참이었다. 포토 라인 너머에서 정상들의 동선을 고 있던 카메라기자들의 플레시가 일제히 터지기 시작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 함께 얘기를 나누던 부시 대통령이 이 대통령이 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이 대통령 쪽으로 걸어가 "Hi, President Lee You are late!(이 대통령 지각했네)"라고 반기며 포옹하듯 인사하는 장면이 벌어졌던 것. 부시 대통령이 이 대통령의 통역인 김일범 청와대 행정관까지 양팔로 안는 재밌는 장면이 연출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정래권 기후 변화 대사는 “사흘 동안 열린 행사기간 중 두 나라 정상이 그렇게 친밀감을 과시하고 카메라 플래시가 한꺼번에 터진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8번째 G8회의에 참석하는 부시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에게 다가가 “서로 만나 적 있느냐”고 물은 뒤 이 대통령을 소개했다.부시는 이 대통령의 팔을 잡고 잔디밭에 모인 12명의 정상에게 일일이 소개시켰다.후친타오 중국 주석은 그 때까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잔디밭 환담이 계속되는 중 부시 대통령이 이 대통령과 한 동안 귀엣말을 나누는 장면도 다른 정상들의 시선을 끌었다.고위 소식통은 뒤에 부시의 다음과 같은 귀엣말 내용을 이 대통령에게서 전해 들었다고 한다.

“당신이 새벽 마다 교회 주차장에서 오랫동안 봉사를 하지 않았느냐.그건 정말 굉장한 거다.”

이 대통령은 1992년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매주 일요일 새벽 6시 자신이 다니던 서울 신사동 소망교회 주차장에서 3년 4개월 동안 주차요원으로 봉사한 적이 있다. 소망교회의 장로가 되기 위한 여러 '필수 코스'의 하나라고 한다. 열성적인 봉사활동 덕분에 이 대통령은 형인 이상득 의원과 함께 95년(94년에는 투표에서 탈락) 장로가 됐다.

부시도 독실한 기독교인이다.기독교 근본주의자다. 술을 즐기고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그는 마흔이 되면서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교회에 열성적으로 다녔다. '거듭 태어났다'는 뜻의 '본 어겐 크리스천'(Born Again Christian)이다.이명박-부시의 종교적 코드는 이렇게 통하고 있다.

다시 도야코로 돌아가 보자.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화제는 한국의 촛불시위로 옮아 갔다.부시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젊은 시절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들었다. 인생은 업(up) 앤 다운(down)이 있고, 고생은 곧 사라진다. 확신컨데 잘 될 거다”라고 언급했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1시간으로 예정된 회담에서도 부시 대통령은 한·미간 현안을 완전히 파악해 매우 적극적으로 임했다. 이 대통령이 “당신이 임기 전에 꼭 해줘야 할 일이…”라며 말을 꺼내자 마자 “아! FTA 안다.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또 비자면제 프로그램을 언급했을 때도 스태프들을 향해 “누가 담당이지? 잘 챙겨라”고 바로 지시를 내리는 식이었다. 이래서 회담은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이 당겨진 40분 만에 끝났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부시가 다른 나라의 지도자를 좋아하는 기준은 먼저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가졌느냐, 솔직한가, 이런 것들인데 기독교적인 공감대도 호감을 갖는 상당한 요인일 수 있다”라고 말했다.부시는 지난 4월 캠프 데이비드 별장 만찬에서 이 대통령에게 함께 기도할 것을 제안,두 정상 부부가 나란히 손을 잡고 기도했다고 한다.나란히 손잡는 기도는 별장외교나 목장외교에서 자연스럽다.워싱턴의 공식 회담에선 나오기 어려운 자세들이다.종교적인 감성코드는 이처럼 사적 공간에 초청될 때 살아난다.반면 일본의 후쿠다 총리는 미국에 갔을 때 부시 대통령과 워싱턴 회담만 했었다.

2001년부터 5년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아태담당 선임 보좌관을 지낸 마이클 그린 조지 타운대 교수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을 위험에 빠뜨리게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이번 독도 조치는 부시가 이 대통령에 대해 호감과 존중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독도 문제를 한국의 입장에서 신속하게 처리한 배경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시에게 끈질기게 심어놓았던 '역사 개념'이라는 분석도 있다.독도 이슈는 '영토 문제'가 아니라 '역사 문제'라는 개념이다. 독도와 당시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일관계가 악화됐던 2006년 9월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독도 문제의 역사적 성격을 회담 시간의 절반 가량을 할애해 '강의'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여덟 차례 만났고 그 중 세 차례 정도 독도 문제를 설명한 것으로 안다”면서 “노 대통령은 독도는 한국민에겐 영토 문제가 아니라 역사문제이고 일본이 제국주의 팽창전략의 전초기지로 독도를 편입해 결국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의제에 없던 이슈를 노 대통령이 집요하게 반복해서 설명해 부시 대통령이 피곤해 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이 때문에 한·미 정상회담 분위기가 어색하게 흐르기도 했지만 독도에 대한 한국민의 정서와 역사적 성격이 부시 대통령의 머리속에 각인된 계기가 됐을 것이란 설명이다. 지난 달 29일 부시 대통령은 미 지명위원회의 독도 영유권 표기와 관련,이태식 주미 대사가 “독도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자 “아, 지리(Geographic) 문제.나도 안다.콘디(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와 얘기하라 ”고 말했다.

안성규·김수정 기자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