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인프라가 ‘경제도시 베이징’ 밑천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미래산업을 향한 베이징의 도전=베이징의 중심을 관통하는 창안제(長安街)는 ‘정치 1번가’라고 할 만하다. 인민대회당과 중국 지도자들의 사무실이자 숙소인 중난하이(中南海), 국무원 사무실 등이 창안제를 따라 자리 잡고 있다. 이 길 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정치와는 관계가 먼 듯한 풍경과 부딪친다. 널찍한 공원, 하늘로 치솟은 현대식 빌딩, 노천 카페와 분수대 등 이국적 느낌이 물씬 난다. 빌딩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니 우뚝 선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金融街(진룽제)’라는 초서체 글자가 새겨 있다. 베이징의 금융타운임을 보여주는 징표다.


중국이 이곳에 최첨단 금융타운을 조성한 이유는 분명하다. 베이징을 중국 최고의 금융허브로 키우기 위해서다. 상하이의 푸둥(浦東)을 능가하는 금융센터를 세우겠다는 야심이다. 그 프로젝트는 착실히 진행 중이다. 중국은 중국은행·공상은행·건설은행·농업은행 등 주요 금융업체 본부를 이곳으로 모았다. 리츠칼튼·인터콘티넨털 등 5성급 특급 호텔, 홍콩계 고급 백화점인 레인 크로퍼드 등을 끌어들여 국제 비즈니스센터 기능을 갖췄다.

중국은 새로 중국에 진출하는 외국 금융기관 본부를 베이징에 두도록 유도하고 있다. JP 모건·UBS·소시에테 제네랄레 등 외국계 은행의 중국법인이 이미 진룽제에 둥지를 틀었다. 하나은행도 베이징과 상하이를 저울질하다가 지난해 12월 베이징을 선택했다. 지성규 하나은행 중국법인 부행장은 “베이징은 중국 메이저 은행과 금융당국이 몰려 있어 정보 교류에 유리하다”며 “새로 중국에 진출하는 외국계 금융사가 그 본부를 베이징에 두는 게 대세”라고 말했다.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중국 본사도 베이징에 뒀다.

진룽제가 베이징 금융산업의 성장을 보여준다면, 인근 중관춘(中關村)은 IT 산업의 메카다. 1988년 조성된 중관춘에는 1만9500여 개 기업이 입주했다. 이 중 70%는 IT 기업이다. 롄샹(聯想)·하이얼(海爾)·하이신(海信) 등 중국 전자기업과 모토로라·지멘스·노키아·루슨트 테크놀로지 등 외국계 IT 기업의 지역본부가 베이징에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노키아·IBM·HP 등은 베이징에 R&D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중관춘을 ‘중국의 실리콘밸리’라고 하는 이유다.

◇확대되는 베이징 경제권=이번 올림픽은 베이징을 비롯해 중국 6개 도시에서 열린다. 축구 예선이 열리는 톈진(天津)과 친황다오(秦皇島)는 베이징에서 가깝다. 지도에서 세 도시를 선으로 연결하면 징진지(京津冀)권이 그려진다. 징진지는 베이징·톈진·허베이(河北·약칭‘冀’)성을 연계한 지역이다. 주요 도시로는 베이징·톈진 이외에 스자좡(石家庄)·탕산(塘山)·청더(承德)·장자커우(張家口)·바오딩(保定) 등이 있다. 인구는 1억2000만 명에 육박한다.

이 세 지역이 경제적으로 통합할 경우 윈-윈 게임이 된다는 게 베이징 당국의 노림수다. 베이징의 금융과 IT, 톈진의 전자·통신 등 하이테크 분야 제조업, 허베이성의 저기술 제조산업 등이 어우러져 자족 기능의 거대한 경제클러스터가 형성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곽복선 KOTRA 베이징 무역관장은 “중국이 80년대 주장(珠江)강 삼각주, 90년대 창장(長江)강 삼각주를 개발했다면 2000년대는 보하이(渤海) 경제권을 집중 육성 중”이라며 “징진지권 경제권은 그 핵심 지역이며, 올림픽이 징진지 경제권 형성의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징진지권의 경제 통합 작업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베이징~톈진 고속철도가 개통돼 30분 안에 두 도시를 오갈 수 있게 됐다. 징진탕(베이징~톈진~탕산) 제2고속도로를 놓았고, 제3고속도로도 곧 착공한다. 징진지권이 1일 생활권을 이루게 된 것이다. 베이징과 톈진 접경지역에는 진징신청(京津新城)이라는 거대 레저·비즈니스 타운이 건설되고 있다. 올림픽이 베이징의 속살까지도 바꾸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이철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