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전주국제영화제] 上. 23일부터 '쿠바 영화 특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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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 혁명이 억눌러온 예술의 흔적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 ‘딸기와 초콜렛’. 개인적인 시선과 자유분방한 연출이 돋보인다.

▶ 쿠바 흑백영화 ‘저개발의 기억’

▶ 일본 흑백영화 ‘역분사 가족’

▶ 개막작 한국영화 ‘가능한 변화들’

멀고도 먼 나라, 쿠바의 영화가 온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 사회주의 나라는 미국의 봉쇄정책 때문에 우리와 국교도 없고, 영화 역시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오는 23일 개막하는 제4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쿠바영화 특별전을 마련해 한때 연간 150편의 영화를 만들어낸 이 미지의 영화 강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연다.

17편의 상영작 가운데 영화교과서에 단골로 거론되는 '저개발의 기억'(1968년)같은 고전과 비교적 최근작인 '나다'(2001년)는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떠난 뒤 혼자 남은 중산층 남자와 우체국 직원 여자가 각각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대칭적인 작품이다. 이들의 일상 뒤편에는 쿠바사회의 고립된 처지나 관료주의가 깔려 있지만 영화는 이를 지극히 개인적인 시선과 자유분방한 연출기법으로 묘사한다. 한마디로 사회주의 영화들이 갖기 쉬운 도식성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딸기와 초콜렛' (93년) 역시 그렇다. 혁명 이후 세대인 한 대학생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동성애 사진작가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이 억눌러 왔던 다양한 예술의 향기를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다. 카리브해 특유의 흥겨운 음악이 곁들여진 '휘파람'(98년)과 다큐멘터리 '살사를 찾아서'(99년)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같은 쿠바음악에 매료됐던 이들의 구미를 당길 만하다.

60년대 초부터 일본 독립영화의 산실 역할을 한 ATG(Art Theater Guild) 회고전도 주목할 만하다. ATG는 쇼치쿠.도에이.도호 등 메이저 영화사들에 대항해 62년 일본 각지의 영화관 10여곳이 뭉쳐 만든 독립.예술영화 유통망이다. 저예산으로 힘겹게 만들었지만 비상업적.비오락적이란 이유로 극장을 잡지 못하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결성됐다.

ATG는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것으로 출발했지만 나중에는 3억원 내외의 저예산 영화를 제작하는 일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젊은 감독들이 ATG를 통해 재능을 마음껏 펼침에 따라 일본 영화는 더욱 풍성해질 수 있었다.

이번 회고전에는 전통적인 연극 장치를 스크린에 끌어들인'동반자살'(69년), 학생운동의 분열양상을 일본 근대사에 비유한 '료마 암살'(74년), 중산층 가정의 허위의식을 통렬한 코미디로 그려내 세계적 주목을 받은 '역분사 가족'(84년) 등 모두 11편이 소개된다. '감각의 제국'으로 유명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작품으로는 10세짜리 한국소년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긴 '윤복이의 일기'(65년)와 애니메이션 '닌자 무예장'(67년)이 상영작에 포함됐다.

한국영화로는 개막작인 민병국 감독의 '가능한 변화들', 김홍준 감독의 '나의 한국영화', 영화제 측이 제작비를 지원하는 '디지털 삼인삼색'프로젝트로 만들어진 봉준호 감독의 '인플루엔자'등이 선을 보인다. 이 밖에 올해 96세인 포르투갈 감독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가 유람선을 무대로 유럽 문명에 대한 성찰적 시선과 충격적 결말을 보여주는 '토킹 픽처', 30대 초반 태국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클이 무성영화와 뮤지컬을 마구 섞어 만든 코미디 '비밀요원 철고양이의 모험' 등 눈여겨볼 작품이 적지 않다. 물론 여기 소개된 것은 모두 250편(단편 136편 포함) 의 상영작 중 일부일 따름이다. 자세한 상영 일정과 정보는 (www.jiff.or.kr) 참조. 폐막은 5월 2일이다.

이후남.홍수현 기자

*** 가족 만화영화 2편 기발한 연주, 사실적 묘사 뭉클

▶ ‘도쿄 대부’의 세 노숙자는 버려진 아기의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갖은 모험을 마다 않는다.

가족 관객을 겨냥한 작품으로는 프랑스 실뱅 쇼메 감독의 '벨빌 랑데부'와 사토시 콘 감독의 '도쿄 대부' 등 두 편의 애니메이션이 기다린다.

'벨빌 랑데부'는 암흑가에 납치된 손자를 구하기 위해 온갖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할머니의 놀라운 활약이 펼쳐진다. 극 중에서 왕년의 스타 출신인 세 쌍둥이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기발한 연주의 흥겨움은 한번 들으면 쉬 잊기 힘들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과 음악 부문에서 수상 후보에 올랐다.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도쿄 대부' 도 가슴 뭉클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거리에 버려진 갓난아기에게 집을 찾아주려는 노숙자 세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 과정에서 세사람은 저마다의 아픈 과거와 화해하는 계기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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