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칼럼>정치에 개재된 가장 큰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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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치에 개재된 가장 큰 문제는 제 한 몸도 다스릴 능력 없고,다른 사람도 모르지만 제 자신을 더욱 모르는,사람이란 존재가남을 지도하고 다스리려 한다는 점일 것이다.이것은 정치 활동이가진 원죄(原罪)다.결국 폭력이야 말로 정치 권력이 가진 대표적 특성이다.본래 이러니 대체로 철면피거나 매우 아둔한 자들이, 특히 한국에서는,정치를 하더라는 점을 그다지 문제삼을 것은없다. 한국 정치는 속내로는 아직도 용상(龍床)또는 동헌(東軒)으로서 온전하게 남아 있다.선거란 용상이나 동헌을 차지하는 새로운 세습.반란 내지 엽관(獵官)절차일 뿐이다.앞으로 얼마나더 이런 세월 속에 남아 있어야 할지 모른다.선거를 민주적으로치르는 것도 좋은 정치를 위한 충분조건은 못 된다.알고 보니 단지 바깥 모양새에 지나지 않더라는 한탄이 나온다.용상 위나 밑에서 별별 장터가 서고 거기서 돈거래가 성행할 가능성을 줄여나가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가 할 천 이(遷移)적 의무일 것이다.안 그랬다가는 임기가 끝나면 전임 권력자를 감옥에 보내야 하는 일만 자꾸 일어난다는 걱정을 아니 할 수 없다.
전설 속에는 현군(賢君)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현군이란 암군(暗君)과 폭군들만 대를 잇는 현실이 하 답답하여 당시의 지식인들이 꿈꾼 백일몽(白日夢) 아니면 모범 교재 삼아 날조한 안타까운 거짓 기록에 불과했을 것이다.맹자는 현군의 가능성을 성선설(性善說)에 기탁(寄託)해 보려 했지만 개인은 몰라도 정치권력의 속성으론 성선설 따위는 황당할 뿐이다.위대한 왕은 있을수 있다.그러나 착한 군주는 상상하기 힘들다.
요새 세상은 사정이 더 나쁘다.평생직 임금이 논밭 경제에 얹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임기직 정치권력이 시장 경제와 들락날락 접선하고 있기 때문이다.유럽의 경우 오랫동안 왕관의 권위를 때려부수는 것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켜 왔다.그리고 끈질기게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수선해 왔다.민주주의란 정착된 제도라기 보다 늘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이 아닐까 싶다.우리라면 워터게이트 사건 같은 것 때문에 대통령이 사임하기에까지 이른다는 것은 꿈도꾸지 못한다.한국은 암군, 폭군 말 고도 「부군(腐君)」을 양산(量産)하는 내부장치를 아직 버리지 못한 나라다.「용상+민주+시장」주의형 정치 구조를 가진 나라다.
80년대 중반 전두환(全斗煥)대통령 밑에서 체제론적 음모 하나가 독재정권과 열광적 사관(仕官)형 지식인의 야합 아래 얽어져 양성화됐다.우리나라에는 자유시장형 경제는 맞지 않고 정부의강력한 개입이 있는 조합주의적 형태가 바람직하다 는 이른 바 「암즈덴 보고서」가 그 핵심이었다.갑자기 시장기능의 취약성을 침소봉대하는 「시장의 실패」이론이 유행의 물결을 탔다.싱가포르예찬이 크게 일어 났다.한국의 사회적 전통을 강조하는 문화적 상대주의가 붐을 탔다.시장으로 하여 금 정치를 위해 수청드는 것을 영구적 제도로 삼자는 음모였다.
정치의 가치 기준은 정의다.반면에 경제의 가치 기준은 효율이다.경제의 수청을 받는 정치는 용상 위에서 기진(氣盡)하지 않으면 용상 밑에서 맥진(脈盡)한다.
전두환.노태우(盧泰愚)수뢰 혐의 사건은 용상 위에서 일어난 정치의 기진이다 .장학로(張學魯)알선 수재 혐의 사건은 용상 밑에서 일어난 정치의 맥진이다.
김영삼(金泳三)정부가 맨 먼저 「개혁」해야 했던 것은 한국 정치의 「암즈덴 구조」였을지도 모른다.장학로가 받은 돈의 대부분은 기업이 준 것이 아니라 매관(賣官)대금이었다는 소문도 있다.그래서 이번 경우는 정치가 경제의 수청을 들게 한 스캔들에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할지 모른다.그러나 돈에게 직접 물어 보면알 게 될 것이다.용상 주변으로 직접 왔느냐, 동헌에 들렀다가왔느냐, 그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가장 부적절한 처방은 무엇일까.『경제하고 놀지 말고,자지는 더욱 말라』고 하지 않고 『일부함원(一婦含怨)이면 오월비상(五月飛霜)이란 말도 있지 않느냐.여자를 조심해 잘 다루어라』고 자신과 부하를 타이르는 것이겠다.착한 여자를 만난 「李학로」「金학로」는 무사하다는 세간 루머도 돈다.장학로 사건은 터지기는「여자관계」와 원한 사무친 여자의 입 때문이지만 생겨난 것은 정치의 「경제관계」때문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여자의 입 말고도까마귀의 입,돌의 입도 가능할 것 이다.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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